작년 9월 '잔고일보' 받은 뒤 오히려 증가
신한·현대·삼성 대형사 카드론영업 유지
27일 우리·롯데 간담회 등 잇따라 이벤트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9월부터 카드사들에 카드론 잔고를 매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정작 카드론 잔액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한·현대·삼성 등 주요 카드사들이 수익성 유지를 이유로 카드론 영업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감독당국이 "건전성이 최우선"이라며 강도 높은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업계는 카드론 잔액 축소가 쉽지 않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9월 말부터 8개월간 전업 8개 카드사(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와 NH농협카드로부터 대출 관리계획을 날마다 받고 있다. 카드사들은 금감원에 카드대출(카드론·현금서비스·리볼빙)과 가계대출(주택담보대출·오토론·신용대출·기타) 등을 8개월째 날마다 내왔다. 소위 '잔고일보'의 목적은 카드론 잔액을 줄이는 것인데, 일보를 걷은 지 8개월이 지났지만 카드론 잔액은 오히려 늘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전업 8개사 카드론 잔액은 잔고일보 체제 가동 직후인 지난해 9월 말 38조6463억원에서 지난달 말 39조3871억원으로 1.92% 증가했다. 이 기간 삼성카드(5.12%), 현대카드(4.39%), 하나카드(3.53%), 우리카드(2.77%), 신한카드(2.69%)의 카드론 잔액은 2~5% 증가했다. 비씨카드(-4.08%), 롯데카드(-1.87%), KB국민카드(-0.35%)는 소폭 줄였다.
신한카드(지난달 말 기준 잔액 8조3264억원), 삼성카드(6조3518억원), 현대카드(5조8856억원) 등 대형사의 카드론 잔액이 늘면서 전체 업권 카드론 잔고가 늘었다. 특히 삼성카드와 신한카드의 경우 순이익 1위를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어서 감독당국 요청처럼 단숨에 카드론 영업을 줄이기는 힘든 상황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카드사는 잔고일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감독당국의 '이벤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감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진성원 우리카드 대표, 기동호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등 카드사 2곳과 캐피털사 4곳 대표를 불러 고객 개인정보 유용, 대출 연체 등 내부통제 현황에 관한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금감원이 지난 19일 여의도 본원에 79개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개최한 건전성 강화 워크숍에 이은 '릴레이 간담회'다.
카드사들은 이 같은 간담회를 잔고일보와는 별개의, 사실상 추가 경고성 조치로 받아들이고 긴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25일 금감원이 현대카드에 대해 '건전성 관리 미흡'을 이유로 경영개선 요구 조치를 내린 사례는 업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현대카드는 카드론 잔액이 5조원대로 신한, 삼성, KB국민카드(6조7346억원)보다 적은 데다 연체율도 낮은데 제재를 받은 만큼, 감독당국의 기준이 예전보다 엄격해졌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감독당국이 카드사는 물론 2금융권 전반에 건전성 관리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상황이지만 카드론 잔액을 개선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잔고일보를 내라는 지시 자체가 이미 카드사의 자율 경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고강도 대책인데, 이보다 더한 규제 조치를 하기가 어려워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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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권 관계자는 "카드론 대출은 신용도 등을 이유로 1금융권에서 받아주지 않아 2금융권으로 내몰린 서민들을 위한 사업이어서 감독당국이 대놓고 규제하기에는 굉장히 부담스럽고 민감한 사안"이라며 "감독당국으로서도 당분간은 잔고 일보를 걷는 동시에 틈틈이 업권 미팅을 통해 건전성 관리 당부 내지는 구두 경고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을 것이고, 주요 카드사들로서도 카드론 영업을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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