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韓 등 국민 '입대 의사' 저조
"우리가 젊은 층 저버려" 자성 목소리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 정책이 세계 각국의 지정학적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가운데 젊은 세대들의 군 입대 기피 분위기가 사회 문제로 재조명되고 있다. 모병 확대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는 물론 전쟁의 위기에 처해도 싸울 의사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청년층의 설문조사가 나올 정도다.
유럽 재무장 걸림돌…군 꺼리는 청년층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정전 및 평화 협상을 강행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본격적인 군사적 재무장에 나섰다. 국가 총생산(GDP) 대비 3~5%를 군비로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감소하는 군인의 숫자는 유럽 군사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은 청년들의 입대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대표적인 유럽 국가다. 독일 정부가 2022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 1000억유로(약 160조원)를 특별기금 명목으로 국방력 강화에 투입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입대 기피로 젊은 신병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독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 육군이 모집한 신병 4명 중 1명(25%)은 6개월 이내에 전역했다. 젊은 신병이 줄어든 결과 독일군 총 병력은 18만명 남짓으로 감소했으며, 군 평균 연령은 2021년 33.1세에서 지난해 34세로 높아졌다.
독일의 프리랜서 기자 올레 뉘멘은 최근 '나는 왜 조국을 위해 싸우지 않으려 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외국에 점령당하면) 삶은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전쟁 시에도 군 입대 의사가 없다는 젊은층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올해 2월 시장조사기업 유고브는 영국 Z세대(1997~2012년 사이 출생한 세대)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조국을 위해 군에 입대해 싸울 의사'를 물었는데, 단 10%만 입대하겠다고 답했다. 2004년 같은 내용의 설문 조사에서 22%가 입대하겠다고 답한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난 수치다.
영국 Z세대는 20년 전보다 조국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고브의 또 다른 조사에서 '영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고 응답한 젊은층 비율은 지난해 기준 41%로 2005년 같은 조사에서 나온 80%의 절반 수준이 됐다.
국내서도 한반도 전쟁 참여 의사 갈수록 떨어져
한국도 전투 참여 의사가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 국방대가 발표한 범국민 안보 의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전쟁 발발 시 '가능한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은 13.9%에 그쳤다. 같은 질문에 대한 연도별 응답률은 2014년 22.7%, 2020년 20.9%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 여론조사기업 '갤럽'이 전 세계 성인들을 대상으로 '조국 수호 의지'를 조사한 결과, 입대해 응전하겠다고 답한 선진국 시민 비율은 개발도상국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유럽연합(EU) 전체는 32%, 캐나다는 34%였으며 일본은 9%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응답 비율이 높았던 미국도 41%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분쟁 지역이 많은 중동 평균은 73%에 달했고, 인도에서도 76%가 입대하겠다고 답했다.
갤럽은 "선진국 시민은 개도국보다 무기를 들 확률이 평균 두 배는 더 낮다"라며 "최근 몇 년간 국제 분쟁이 늘었지만, 선진국에서 싸울 의지는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시민, 특히 청년층에서 응전 의지가 약화한 원인이 십수년간 누적된 경제 불황과 정치적 혼란에 있다고 봤다. 영국 매체 스펙테이터는 "기득권은 주택 월세에 신음하는 젊은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임금 경쟁에 몰아넣었다. 젊은 층이 국가에 자부심을 가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며 "우리가 청년을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에선 포퓰리즘의 발흥, 법치의 위기 등 다양한 정치적 위기 상황이 있었다"며 "권위주의 정치를 경험했던 기성세대보다 민주주의에 더 친숙한 젊은 층의 상실감과 실망감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깃발 결집 효과'는 유사시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깃발 결집 효과는 국가적 위기에 맞서 국민이 단합된 의지를 보여주는 현상을 뜻하는 정치학 용어로, 존 뮬러 미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 교수가 고안한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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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가장 극적인 깃발 결집 효과를 겪고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로 꼽힌다. 스페인 국제정치 싱크탱크 'CIBOB' 분석에 따르면, 전쟁 전 우크라이나의 여론은 러시아 유화 정책과 친 EU 및 서방 정책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었으나, 침공이 임박한 2022년 2월 이후 확고한 반(反)러시아·친(親) 서방으로 기울었다고 한다. 이후 최근까지 우크라이나는 뚜렷한 항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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