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인 병훈씨, 공소기각 받은 사연
지하철역서 경찰관 팔 물어
현행범 연행, 기소까지 됐지만
국선 변호인 활약, 공소기각 이끌어내
중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는 김병훈씨(59·가명)가 유치장에 하루 구금된 사연이다. 경찰은 병훈씨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재판에 넘겼다. 병훈씨는 변호사를 살 돈이 없었다.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이 국선전담 변호인인 박철수·박유영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박철수 변호사는 병훈씨의 상태에 주목했다. 병훈씨는 파킨슨병까지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경적에 해당하는 100㏈(데시벨) 넘는 소리만 들었고, ‘빛’만 보였다. 점자블록도 지팡이를 세게 내리쳐야만 알아챌 수 있었다. 박 변호사와 병훈씨의 ‘특별한 소통’이 시작됐다. 손바닥에 질문을 적고 답하는 필담이었다.
연행된 그날 병훈씨는 장애인 택시를 불렀다. 기사는 엉뚱한 지하철 출구에 내려줬다. 그때부터 병훈씨는 혼란스러웠다. 길을 잃고 헤맸다고 했다. 그러다 누군가 자신을 붙잡았고 점자블록을 막아서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누군가’의 팔을 깨물었는데, 알고 보니 경찰관이었다는 것이다. 병훈씨도 갈비뼈가 4대나 부러졌다.
경찰에서 50여분 조사를 받고 석방된 병훈씨는 경찰로부터 “장애 진단서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안 내겠다 버텼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약점을 이용해 선처를 구하긴 싫었다.’ 병훈씨는 박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결정적으로 일이 꼬인 계기였다. 병훈씨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서 무죄 받고 경찰 잘못을 알리고 싶었다’고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 대로 일은 풀리지 않았고 결국 기소가 됐다.
박 변호사는 병훈씨 재판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①장애인인 병훈씨 대한 경찰의 보호조치는 적절했나 ② 연행과정에서 ‘미란다원칙’은 고지됐냐였다. 박 변호사는 “피고인은 부적합한 보호 조치에 저항한 것” “(경찰관이) 자신을 납치하는 것으로 여기고 팔을 깨문 것으로 보여 정당방위”라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냈다. 또 “경찰관이 병훈씨가 장애인임에도 일반인과 다름없이 대했고, 병훈씨는 경찰인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압하듯 끌고 나가 수갑을 채우고 체포했다”며 “공권력 남용”이라고 변론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 경찰관을 법정 증인으로 불러냈다. 그 자리에서 경찰관에게 “청각 장애와 시각 장애가 같이 있는 분들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절차가 있느냐”는 취지로 물었다. 경찰관은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병훈씨는 장애로 인해 상황을 ‘오해’했고, 연행 과정의 ‘적법 절차’는 제대로 지켜졌다고 볼 수 없었다. 박 변호사는 경찰 역시 상황을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병훈씨가 그 정도로 심한 장애인인지 몰랐을 것이라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검은 수사심의위를 열어 병훈씨에 대한 공소를 취소하기로 결론을 모았다. 그에 따라 법원은 병훈씨에 대해 공소기각 결정을 내려 사건을 종결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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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국선 변호를 하다 보면 화나 슬픔이 많은 분들을 피고인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이 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란다 원칙은?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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