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회계부정 등 19개 혐의
1심 이어 2심에서도 '무죄'
재판부, 검찰 증거 인정 안 해
회계부정 혐의엔 "고의 없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며 8년간의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3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하고,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13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검찰이 제출한 주요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으로서는 주어진 상황 내에서 최대한 적법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처럼 일정한 제약이 존재하는 특수 상황에서 압수수색 절차에서 최대한 적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검사에게 증명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과 시점 등 쟁점 사항에 대해 차례로 짚으며 검사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두 회사의 합병 보고서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조작됐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문건들을 검사의 주장과 같이 해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나, 미래전략실이 대략 검토한 후 본격적 검토는 양사가 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일부 회계부정이 있었다고 판단한 서울행정법원의 1심 판결이 이번 항소심의 변수로 떠올랐지만, 재판부는 '과실을 넘어 고의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바이오의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 회계처리에 대해 "자본잠식 등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별다른 합리적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지배력 상실 처리를 했다"며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한 것이라 판시했다. 이에 검찰은 행정법원의 판결을 반영해 2심 재판 과정에서 공소장을 변경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콜옵션이 행사되면 삼성바이오가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위험이기 때문에 이 당시에 공시했어야 된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피고인들이 나름대로 판단을 거쳐서 회계 처리를 한 것이지 은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일부 피고인들이 특정한 의도 내지 방향성을 드러내거나 문서를 조작하는 등 부적절한 행위가 개입했다"면서도 "그 처리 결과는 삼성바이오의 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상실'이라는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검사의 주장과 달리 그 판단에 이르는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또 "감독 기관의 사후 감리 과정에서 전문가들조차 결론들이 엇갈렸던 고난도의 회계 사안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삼성바이오가 회계 기준 위반에 대한 확정적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원칙 중심 회계 처리에 반드시 어긋나는 것이라고 판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여러 이유를 다 모아보더라도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검사의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지난해 2월 1심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이 회장의 19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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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회장에 대한 수사는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을 분식회계 혐의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 배당됐다. 이후 2020년 9월 수사 결과 발표까지 21개월이 걸렸다. 이 기간에 이 회장 측 변호인단에 따르면 총 300여명을 860회 상당 조사하고 53곳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이 사건 무죄로 8년간 끌어온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셈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300명을 조사하고 53곳이 넘는 장소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로 공소 유지를 이어온 재판이 2심에서도 19개 혐의 모두 무죄를 받아 완패했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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