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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기업 죽느냐 사느냐…빅테크 '픽'에 달렸다 [테크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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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조달러 기업 입성한 브로드컴
일찍이 클라우드 생태계 M&A 왕성
빅테크 공급망 선점했기에 성과 맺어

지난해 말 투자자들에게서 가장 주목받은 반도체 기업은 '브로드컴'입니다. 시가총액 1조달러(약 1460조원)를 돌파했으며, 2024년 한 해에만 주가가 두 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일각에선 언젠가 브로드컴이 엔비디아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예상까지 나옵니다.


반도체기업 죽느냐 사느냐…빅테크 '픽'에 달렸다 [테크토크] 브로드컴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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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은 원래 유·무선 통신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최근에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맞춤형 반도체 설계를 도우며 몸집을 불려 왔지요. 이전부터 체급 자체는 거대했지만, 인텔·AMD·엔비디아 같은 초대형 브랜드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받았지요. 그런 회사가 어쩌다 갑자기 반도체 업계의 다크호스로 올라섰을까요.


셋톱박스 칩 만들던 회사, 클라우드의 중심으로

반도체기업 죽느냐 사느냐…빅테크 '픽'에 달렸다 [테크토크] 브로드컴의 무선 통신기기 칩. 브로드컴은 셋톱박스, 공유기 등에 탑재되는 레거시 반도체를 주로 설계하던 기업이다. 브로드컴

브로드컴은 1991년 미국 실리콘 밸리에 설립됐습니다. 이 회사의 초기 사업은 케이블 TV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반도체 제작이었습니다. 이후 싱가포르 '아바고 테크놀로지'를 합병하며 유·무선 통신기기 제조업체로 기반을 잡았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로드컴의 입지는 값싼 반도체를 만드는 단순 전자기기 제조업체였습니다.


브로드컴의 부상은 클라우드 시대와 함께 개막합니다.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의 클라우드 사업 수요가 늘면서 브로드컴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데이터센터 관련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삼켰습니다. 정점은 2022년 5월 무려 610억달러(약 89조원)를 들여 진행한 'VM웨어' 인수였지요. VM웨어는 안정적인 클라우드 개발 환경 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가상 머신(VM)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또 브로드컴은 빅테크들이 추진하던 '자체 칩 생산' 공급망에도 서서히 침투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구글이 자랑하는 자체 인공지능(AI) 가속기인 텐서 처리 유닛(TPU)은 브로드컴과 합작해 개발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기업의 자체 설계 반도체에 브로드컴의 지분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체 브랜드만 없을 뿐, 전체 반도체 시장에 포석을 깔아둔 셈이지요.


빅테크 칩 만드는 '이름 없는 팹리스'

'알게 모르게 시장에 침투한' 브로드컴의 전략은 AI 붐과 함께 열매를 맺은 듯합니다.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TPU 등 수요가 한없이 치솟으면서 브로드컴의 칩 수요가 오는 2027년까지 무려 900억달러(약 131조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자체 전망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일각에서는 브로드컴의 사업 모델이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독점'을 깰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엔비디아는 범용 AI 가속기로 자리매김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개발하지요. 현재 GPU의 AI 훈련 성능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지만, 앞으로 AI 서비스가 상용화하면 최고 성능의 비싼 칩보다는 효율적이면서도 저렴한 칩을 수급해야 합니다.


반도체기업 죽느냐 사느냐…빅테크 '픽'에 달렸다 [테크토크] 구글 TPU 데이터센터(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아, 코발트 칩. 모두 브로드컴, ARM 등 팹리스 기업들과 협력해 클라우드 벤더들이 자체 개발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홈페이지

무엇보다도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인 빅테크들은 칩을 주문하고 확보하는 모든 과정을 통제하길 원할 겁니다. 엔비디아에만 모든 칩을 의존한다면, 공급이 불안정할 때 대책이 없어질뿐더러 가격 협상력도 줄어들 테니까요.


이 때문에 아마존은 트레이니움이나 인퍼런시아를, 구글은 TPU나 액시온을, MS는 마이아나 코발트 같은 데이터센터 칩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 과정에 가담하는 '이름 없는 전문가들'이 바로 브로드컴, ARM, 마벨, 미디어텍 같은 기업들입니다.


클라우드 벤더 간택받는 반도체 기업이 생존한다

브로드컴이 부상한 비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클라우드 사업 초기, 왕성한 M&A를 통해 데이터센터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다양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확보한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빅테크들의 반도체 설계 사업에 최대한 밀착하는 데 성공했다는 겁니다.


반도체기업 죽느냐 사느냐…빅테크 '픽'에 달렸다 [테크토크] 브로드컴의 GPU 스위칭 칩 '제리코-3'.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통신에 특화한 ASIC 칩을 설계하면서 새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브로드컴

두 전략 모두, 오늘날 미국, 나아가 전 세계를 주도하는 빅테크들의 사업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 그들의 공급망을 조기 선점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브로드컴은 빅테크들의 '간택'을 받았기에 시총 1조달러를 뚫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지난해 빅테크의 선택으로 인해 흥망의 기로가 갈린 기업들은 브로드컴뿐만이 아닙니다. AI 시대가 다가오면서 성능 중심의 중앙처리장치(CPU)보다는 전력 효율성 중심의 칩이 필요해지자 빅테크들은 오랜 파트너였던 인텔 기반 칩 대신 ARM 기반 칩으로 서서히 선회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인텔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죠. 결국 한때 인텔에 새 힘을 불어넣을 거라 기대받던 팻 겔싱어 전 최고경영자(CEO)는 은퇴 수순을 밟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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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전통 메모리 강자였던 삼성전자가 곤욕을 치르는 사이, 빅테크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기술에 집중했던 SK 하이닉스가 엔비디아 등 빅테크의 '간택'을 받아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HBM은 중국발 메모리 공급 과잉을 겪고 있는 현시점에도 또다시 하이닉스의 구원투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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