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단일 교과서 국가 적어…단순비교 어려워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아날로그 교육 회귀
미국·독일은 지역별로 채택 여부 달라
국회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가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지위가 격하되면서 올해 신학기부터 디지털 교과서의 활용 여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디지털 교과서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다. 교육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해왔으나 한국과 활용 형태가 다르고, 현재는 아날로그 교육으로 회귀한 곳도 있다.
우선 디지털 교과서 사용 여부에 대한 단순 비교가 어렵다. 한국처럼 모든 학교에서 같은 교과서로 수업하는 국가가 많지 않아서다. 독일은 디지털 학습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지만, 지역·학교별로 사용 여부나 형태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에도 교육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주 정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교과서의 사용 여부는 주 정부가 결정한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성격과 입법 과제'에 따르면 미국의 학교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의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모든 학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는 국가는 에스토니아다. 한국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 성공 사례로 에스토니아를 꼽았는데, 2022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에스토니아가 유럽 국가 중 1위를 차지하며 신흥 교육 강국이 됐다는 것이다. 1997년부터 디지털 교육을 확대해온 에스토니아는 2018년부터 디지털 교과서를 본격 도입했다.
하지만 평가 추이를 살펴보면 에스토니아는 2018년에 비해 2022년 점수가 하락했다. 에스토니아는 독서 부문에서 2018년 5위(523점)이었으나 2022년 6위(511점)로 하락했다. 과학 역시 4위(530점)에서 6위(526점)로 떨어졌다. 수학은 점수는 하락했으나 8위(523점)에서 7위(510점)로 순위가 한 계단 상승했다.
디지털 교과서 정책을 폐지한 국가도 있다. 학습 자료의 80% 이상을 디지털로 전환하며 디지털 교육에 선도적이었던 핀란드는 현재는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우려해 종이 교과서 정책으로 회귀했다. 노르웨이, 핀란드도 유아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교육을 중단했다.
교육선진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2017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2023년 철회했다. 나아가 6세 미만 아동에 대해서는 디지털 교과서뿐 아니라 디지털 교육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종이책을 사용한 교육만 사용하기로 했다.
스웨덴 교육부가 정책 철회 근거로 든 것은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Progress in International Reading Literacy Study)다. 세계 각국의 초등학교 4학년생의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PIRLS에서 스웨덴은 2016년 555점이었으나 2021년 544점으로 하락했다. 다만 순위가 9위에서 6위로 상승했다는 점에서 읽기 능력이 저하됐다고 단순 평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스웨덴의 아날로그 교육 회귀가 정치 이념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파 정부가 지난 정부의 디지털 교육 전환 정책을 백지화하기 위해 PIRLS를 근거로 들었다는 것이다. 2023년 9월 AP통신은 호주 모나쉬 대학교의 닐 셀윈 교육학 교수를 인용해 "스웨덴 정부는 '디지털 기술이 학습을 증진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교육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며 "디지털 기술은 교육의 복잡한 요인 중 일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학습 능력 저하의 원인이 디지털 교육 때문만이 아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불투명한 상태다. 교육부에서는 올해 신학기부터 초중고 일부 학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국회에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디지털교과서는 교과서가 아닌 참고자료로 지위가 격하됐다. 따라서 학교장 재량으로 디지털 교과서 사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활용되더라도 희망하는 학교 현장에는 최대한 보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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