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산물' 고민 끝에…모두에게 친숙한 바나나 맛으로
166종 다양한 선택지…TV 광고 없이 도쿄 대표 기념품으로
일본 여행 기념품으로 자주 보는 것 중 하나는 '도쿄 바나나'인 것 같습니다. 작은 바나나 모양의 카스텔라가 개별포장돼 선물로 나눠주기 좋은데요. 지난주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에서 개최한 한일관광 비즈니스 포럼에 이 도쿄 바나나 회사가 참여해 프레젠테이션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많고 많은 과일 중에 바나나일까요? 도쿄 바나나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오늘은 도쿄 바나나 역사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도쿄 바나나는 1991년 일본 제과업체 그레이프스톤이 발매한 제품입니다. 그레이프스톤은 1989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는데요. 이때는 일본의 연호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 타이밍이었는데요. 당시 도쿄에는 이렇다 할 기념품이 없었기 때문에, '도쿄를 대표하는 새 시대의 기념품을 만들자'는 취지로 상품 개발에 임했다고 해요. 기념품이라면 해당 산지의 유명한 식자재나 토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데, 도쿄는 이렇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대신 도쿄라는 땅의 특성에 주목하기로 했는데요. 일본의 수도 도쿄는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오히려 이러한 특성을 살려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맛'으로 초점을 옮깁니다.
그렇게 일본 사람 누구나 좋아하는 맛, 바나나를 베이스로 한 제품 개발을 결정하게 됩니다. 바나나는 어르신들에게는 한때 먹어보고 싶었던 외래의 맛, 어른이나 아이들에게는 소풍이나 간식의 맛으로 여겨지는 것이죠. 추억이 많은 바나나기 때문에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시도 끝에 바나나 퓌레를 섞은 커스터드 크림을 촉촉한 스펀지케이크에 넣은 도쿄 바나나가 1991년 탄생하게 됩니다. 1992년에는 도쿄 하네다공항, 도쿄역에서 판매할 기회를 얻어 이를 통해 인지도를 서서히 높여나가기 시작했다고 해요. 특히 박스 크기가 도쿄에 출장을 왔다 가는 사람들의 캐리어나 수트케이스에 들어가기 좋은 데다, 상온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에 짐 많은 직장인이 선호했다고 합니다. 특이한 점은 TV 광고에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인데요. 대신에 접객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고 해요. 회사 표어는 '고객의 얼굴이 보입니까?'인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과 직접 마주해 응대하라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는데, 가장 큰 것은 무늬입니다. 바나나 빵에 호피 무늬나 기린 무늬를 넣는 것인데요. 다양한 변형을 줄 수 있는 데다가 고객들에게도 '귀엽다'라는 인상을 주면서 호평을 얻었다고 해요. 2017년에 우에노 동물원에 새끼 판다 샹샹이 탄생한 것을 계기로 빵에 판다 무늬를 넣은 '도쿄 바나나 판다'도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죠.
도쿄 바나나의 또 다른 신기한 점은 제품 이름인데요. 일본에서 바나나는 가타카나로 'バナナ'라고 쓰는데, 도쿄 바나나는 'ばな奈'라고 씁니다. 이는 도쿄 바나나가 성별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그레이프스톤에서 도쿄 바나나를 개발할 당시 도쿄 바나나는 활기찬 수도의 모습을 담은 여자아이의 이미지를 상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쿄 바나나의 박스 패키지를 보면 바나나가 위에 리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빵 무늬에 따라 패키지의 리본 무늬도 이에 맞게 바꿔 멋을 내고 있다고 해요.
그리고 안의 커스터드 크림은 바나나 맛 뿐만 아니라 레몬, 딸기 맛 등 다양한 버전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현재까지 발매된 것을 더하면 166종에 달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도쿄 바나나가 인기를 끌면서 8월 7일을 '도쿄 바나나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제정까지 했는데요. 일본 기념일 협회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받은 기념일이라고 합니다. 숫자 8과 7이 '바'와 '나나'로 읽기 때문에 만든 재치 있는 기념일인데요.
도쿄 바나나 관계자가 소개하는 도쿄 바나나 맛있게 먹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도쿄 바나나를 우유에 적신 뒤 버터에 살짝 구워내 프렌치토스트처럼 먹는 방법과 얼려 먹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도쿄 바나나는 지역의 특산품도 아니고 정말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제품이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 제주도만 해도 현무암 초콜릿부터 시작해 로컬 특색과 재치를 둘 다 살린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도쿄 바나나처럼 우리나라에도 이에 견줄 '서울 OO'가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네요.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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