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면역항암제 '임핀지·이뮤도' 병용요법
말기 간암 환자 중 20% 5년 생존 입증
"환자가 원하는건 장기 생존…전례없는 데이터"
"부드럽게 암 잡아…급여되면 고민없이 사용"
"간암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 개선이다. 5년간 생존 가능한 환자가 20%에 달하는 전례 없는 데이터를 보여준 면역항암제인 임핀지·이뮤도 병용요법(스트라이드 요법)이 보험 급여가 적용돼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면 생존율 개선을 위한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간암 치료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렌자 리마사 이탈리아 후마니타스대 종양혈액학과 교수는 2024 유럽종양학회(ESMO)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난 16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장기간 생존이 어려운 말기 간암의 치료를 위해 다양한 최신 요법의 선택권이 의사와 환자에게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암은 초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어 암이 상당히 진전된 후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특히 암세포가 다른 장기까지 공격하는 진행성 또는 전이성 단계에 이르면 치료가 어려워져 생존율이 급감한다. 국내 전체 암 환자의 5년 상대 생존율은 72.1% 수준인데 간암은 절반인 39.3% 수준에 그친다. 상대 생존율은 성별, 연령 등이 비슷한 일반인 대비 암 환자가 생존할 확률을 뜻한다. 암세포가 뇌, 폐 등 다른 떨어진 장기로 옮겨간 원격 전이가 됐다면 5년 생존율은 3%까지 급락한다.
아스트라제네카(AZ)가 개발한 스트라이드 요법은 이 같은 말기 간암 치료에 있어 최초로 면역항암제를 이중으로 쓴 치료법이다. 암세포는 '프로그램화된 세포사멸 단백질(PD)-L1' 등의 다양한 가짜 통행증을 만들어 정상세포인 척하며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회피한다. 하지만 면역항암제는 가짜 통행증을 무력화해 면역체계의 군인인 T세포가 암을 인식해 공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스트라이드 요법은 PD-L1을 막는 임핀지와 또 다른 가짜 통행증인 CD80 단백질을 막는 이뮤도를 함께 투약해 두 면역항암요법이 동시에 효능을 발휘토록 하는 이중면역항암요법이다.
이를 통해 기존 약들이 독성, 출혈 등의 부작용 우려가 큰 것과 달리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으면서도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번 ESMO에서 공개했다. 치료 시작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스트라이드 요법은 환자의 30.7%가 생존하고, 기존의 표준 치료제이자 대조군으로 설정된 넥사바를 쓴 환자는 19.9%가 살아남으며 생존율 격차를 10%포인트 넘게 벌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 나온 5년 시점에서는 19.6%대 9.4%로 생존율 격차를 두 배까지 늘렸고, 사망 위험은 24% 줄였다. 제1저자로 이번 연구를 이끈 리마사 교수는 "진행성 간암 환자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래 생존하는 것"이라며 "스트라이드 요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혜택이 증가하면서 생존율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면역항암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전홍재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도 "면역항암요법을 쓸 때 제일 크게 기대하는 것은 효과가 나타난 환자에서 그 효과가 장기 지속된다는 것"이라며 의견을 같이했다. 전 교수는 기존 치료법 역시 기존의 생존율인 3%를 뛰어넘는 9%의 5년 생존율을 보인 것에 주목했다. 그는 "2~3차 치료에서 면역항암제를 쓴 환자가 꽤 많을 것"이라며 "이들도 장기 생존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런데도 여전히 스트라이드 요법이 2배 이상의 생존율 차이를 보였다는 점에서 1차 치료에서 이중면역항암요법을 쓴 효과가 계속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스트라이드 요법이 장기 생존을 입증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로 '부드럽고 안전한 요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 교수는 "간암이 다른 암과 달리 간 기능을 잘 유지해줄 수 있는 약을 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암이 진행되면 사망 위험률이 9배 높아지는데, 간 기능이 저하되면 그 위험률이 20배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드러우면서 암을 잡는 게 어려운데 면역항암제는 이에 부합한다"며 "스트라이드 요법은 독성이 강하지 않고, 장기 데이터를 평가했을 때 간 기능의 저하가 거의 없다"고 풀이했다. 리마사 교수도 "위·장의 출혈 위험이 높은 환자는 기존 치료법의 사용이 제한적"이라며 "스트라이드 요법은 5년의 추적 관찰 동안 안전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트라이드 요법은 미국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에서 진행성 간암 1차 표준치료로 권고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허가됐지만 아직 국민건강보험 급여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리마사 교수는 "이탈리아에서는 스트라이드 요법에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며 "5년 생존을 입증한 치료법을 쓸 수 없다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 역시 "스트라이드 요법 도입 전에는 출혈 위험이 있는 약제 중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낮은 약을 쓰는 게 최선이었다"며 "만약 급여까지 적용된다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큰 고민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급여의 필요성을 제언했다.
바르셀로나=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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