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서 심신미약 감경
징역 20년→15년
평소에 잔소리를 심하게 한다는 등 이유로 아버지를 흉기로 살해한 뒤 아파트 지하 주차장 물탱크에 시신을 숨긴 30대에게 징역 15년이 확정됐다.
피고인은 어려서부터 자폐성장애를 앓고 있었는데, 1심 법원이 부인한 심신미약 감경 주장을 2심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형량이 줄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존속살해 및 시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32)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김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29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자택에서 부엌에 있던 흉기로 69세 부친을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 물탱크에 숨긴 혐의로 기소됐다.
7세였던 1999년 자폐성 장애 3급 진단을 받은 김씨는 평소 부친이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TV를 시청하는 자신에게 큰소리로 말을 걸거나 '지하철에서는 다른 짓 하지 말고 휴대전화 게임을 해라', '많이 먹지 마라', '영어단어를 외워라', '용돈기입장을 작성하라'는 등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김씨는 평소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모친과는 달리 부친이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하기 싫은 행동을 강요하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화를 내고 큰 목소리로 잔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14일 부친이 손가락 상처에 바를 연고를 가져다 달라는 말을 들은 김씨는 부친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화를 내며 큰 목소리로 심부름을 시킨다고 생각해 격분했고, 같은 해 5월 28일부터 30일까지 모친이 외가 식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간 사이 부친을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후 김씨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부친을 살해한 다음 시신을 숨길 장소를 물색했고, 아파트 지하 2층 주차장에 연결된 집수정(자연적으로 배수가 불가능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서 지하로 유입된 빗물, 지하수 등을 일정기간 모았다가 펌프를 통해 밖으로 배출하는 곳)에 이르는 문이 항상 열려있고 그곳에 물이 들어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해 5월 초에는 시신을 은닉할 때 사용할 청테이프와 물티슈를 구입해 지하 2층 집수정 근처 계단 옆에 숨겨 놓았다.
그리고 모친이 제주도 여행을 간 다음날인 지난해 5월 29일 김씨는 부친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사이 부엌에서 흉기 2개를 꺼내들고 다가가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 김씨는 범행 장소인 화장실에 물을 뿌려 청소하고 현관 입구와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청 테이프를 붙여 시야를 가리는 등 치밀한 면도 보였다.
1심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변호인은 김씨가 자폐 3급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가 학교를 졸업한 후 의류매장 등에서 일하는 등 충분한 판단 능력이 있다는 이유였다. 또 재판부는 김씨가 미리 범행 도구를 구입하고, 시신을 은닉할 장소를 물색하는 등 범행을 계획적으로 준비한 점과 범행 후 나름대로 치밀한 범행 은폐를 시도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2심 법원은 "피고인이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징역 15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범행 동기가 지나치게 경미하고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며 사회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김씨가 범행을 결심하고 계획한 단계부터 장애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2014년 실시한 IQ 검사결과 62(하위 0.64%), 사회 성숙도 검사결과 사회 연령 4.7세로, 2023년 실시한 임상심리평가에서 IQ 검사결과 78(하위 7%), 적응행동 조합점수 검사결과 53(하위 0.1%)로 평가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2017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형이 확정된 또 다른 사건의 형사재판에서 재판부가 김씨에 대해 자폐성 정신지체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음을 인정한 점도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달리 김씨가 고등학교 졸업 후 공예매장이나 의류공장, 의류매장 등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김씨가 담당한 업무가 청소나 포장, 물건정리 등 단순 작업이었고, 종합복지관의 작업지원팀에서 취업을 알선해 취업하게 된 만큼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업무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계획이나 증거인멸 시도는 오히려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인한 피고인의 판단력 부족이나 사회성 결여 상태를 드러낼 뿐, 심신미약을 부정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김씨가 범행 직후 범행 도구를 숨기고 1층 현관 입구와 엘리베이터의 CCTV에 청테이프를 붙인 다음 시신을 옮기는 등 일부 주도면밀한 행태를 보이긴 했지만 ▲범행 과정에서도 피고인이 CCTV에 청테이프를 붙이는 장면이 촬영된다는 점까지는 고려하지 못한 점 ▲시신을 옮기면서도 은닉장소까지 이어진 혈흔을 대부분 그대로 남겨둔 점 ▲범행에 사용한 식칼을 청테이프로 감거나 식칼, 슬리퍼 등을 비닐에 싸서 방안에 숨겨두면 경찰관들이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인식한 점 등을 지적하며 "피고인은 단편적인 부분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상황을 인식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씨는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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