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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책장에서도 '획기적인 기획' 꺼낸 출판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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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30년간 번역 셰익스피어 전집
지난달엔 '한국 여성문학 선집' 출간

창비, 백낙청 교수 필두로 '한국사상선'
정도전부터 김대중까지 사상가들 다뤄

21세기북스 '철학과 현실' 학문 집대성
"수익보다 사명감과 의무감으로 출간"

출판계는 오랜 불황에 시달린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출판기업 71개사 중 45개사의 매출이 감소했다. 증가한 기업은 26개사에 그쳤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근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기획물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민음사는 지난주 연세대 최종철 명예교수가 30년에 걸쳐 운문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을 완간했다. 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의 4대 비극을 포함한 비극 10편, 희극 13편, 역사극과 로맨스 외 15편, 시 3편, 소네트 154편을 모두 10권, 5824쪽 분량에 담았다.


민음사는 앞서 지난달에는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 역사를 정리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출간했다. 여성문학사는 전 7권, 모두 3256쪽 분량을 출간했다.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희곡 등 전통적 장르뿐 아니라 잡지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등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 형식이 총망라됐다.

불황의 책장에서도 '획기적인 기획' 꺼낸 출판계 민음사 '여성문학사 선집' [사진 제공=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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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학사 선집은 민음사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의 공동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2012년 꾸려져 12년간의 공동연구와 토론을 통해 선집을 완성했으며 여성문학의 원류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제시했다. 기존 문학계에서는 1918년 여성교양지 ‘여자계(女子界)’에 발표된 나혜석의 ‘경희’를 여성문학의 원류로 봤다. 하지만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施通文)’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라고 판단했다.


창비는 지난달 ‘창비 한국사상선’을 선보였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간행위원장을 맡아 조선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까지, 조선시대부터 20세기까지 우리 사상사를 수놓은 위대한 사상가들의 글을 선별해 싣고 해설과 자료를 덧붙였다. 창비는 올해부터 창립 60주년을 맞는 2026년까지 모두 30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달 1차분 10권을 출간했고 내년 상반기에 조광조·조식, 이이, 김구·여운형, 한용운·신채호 등이 포함된 2차분을 펴낼 예정이다.


21세기북스도 최근 철학자 74명이 공동집필한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을 출간했다. 전 4권, 모두 2000쪽 분량이다. 동서양 고대 종교 사상부터 유교, 노장, 성리학, 불교철학, 인도철학, 서양 중세철학, 서양 근대철학, 분석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등 세계 철학의 모든 주제를 집대성했다.


출판사 까치도 5일 쇼펜하우어, 에리히 프롬, 한나 아렌트, 마르크스, 푸코, 루소 등 철학자 6명의 사상을 손쉽게 설명해 주는 ‘오늘을 비추는 사색’ 시리즈 6권을 출간했다.


기획물은 출판사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경우 출판사의 수익에 큰 도움이 된다. 전집을 판매해 한 번에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리즈로 계속 출간할 경우 장기 수익성도 담보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의 호응을 얻지 못해 기획물에 쏟아부은 대규모 투자가 되려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북이십일의 문학 브랜드 아르테는 2018년 고전인문기행 시리즈 ‘클래식 클라우드’를 선보였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인문 분야 세계적 거장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직접 찾아가며 거장의 생애와 작품을 되돌아보는 기획물이었다. 하지만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 했고 지금은 아르테가 클래식 클라우드 투자 규모를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클래식 클라우드는 100권 발간을 목표로 한 장기 기획이었고 현재까지 34권이 발간됐다.

불황의 책장에서도 '획기적인 기획' 꺼낸 출판계 창비 '창비 한국사상선' [사진 제공= 창비]

출판사 관계자들은 전집과 같은 기획물은 많은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 위험 부담이 크다고 했다.


민음사의 이시윤 홍보팀장은 "전집의 경우 비용은 많이 드는데 수익이 날지 알 수 없는 책들이 많다"며 "다만 의미있는 책들이기 때문에 대형 출판사 입장에서 꾸준히 출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창비의 박주용 인문교양출판부 팀장도 지난달 출간한 한국사상선 관련 수익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박 팀장은 "창비는 계속 한국 사상사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고,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고유의 사상이나 철학이 해외 사상이나 철학에 비해 낮게 치부되는 측면이 있어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수익보다는 사명감과 의무감이 우선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출간된 기획물들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은 나쁘지 않다.


민음사 여성문학 선집의 경우 알라딘에서 목표금액 300만원으로 북펀딩을 진행했는데 목표액의 열 배에 가까운 2800여만원이 모였다. 창비 한국사상선도 300만원 목표 금액에 80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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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휴머니스트가 출간한 ‘박시백의 고려사’ 북펀딩에서는 목표 금액의 39배에 달하는 금액이 몰리기도 했다. 박시백의 고려사는 고려사 139권, 고려사절요 35권에 담긴 고려 역사를 5권의 만화책으로 요약한 책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박시백 만화가의 저술인만큼 ‘박시백의 고려사’도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셈이다. 휴머니스트 관계자는 지금까지 ‘박시백의 고려사’ 누적 판매 권수가 7만5000권이 넘는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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