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자 친화 판사에 사건 집중
배심원은 글로벌 기업에 반감
미국 연방 텍사스지방법원이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수출기업들에 대한 NPE(Non Practicing Entity, 특허관리전문기업)의 특허침해소송 무대가 된 배경에는 피고 기업의 사업장이 텍사스 관할지에 있다면 재판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한 미 법원 판례가 자리잡고 있다. 법원에 오랜 기간 근무하며 특허권자에 친화적인 판결을 내려온 해당 법원 일부 판사와 거대 글로벌 기업에 대한 반감이 큰 배심원의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미 연방 텍사스 동부·서부지법에선 지금까지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특허침해 소송 수백 건이 진행됐다. 법률신문이 렉시스넥시스의 미국 법원 소장·판결 검색 서비스 ‘코트링크(CourtLink)’를 통해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주요 수출기업들은 1997년 2월 첫 소송 이후 2024년 6월 14일까지 총 783건의 특허 소송에 피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법원에서 특허침해소송 대부분은 NPE에 의해 시작됐다. 미국 유니파이드 페이턴트(Unified Patent)가 발표한 ‘2023년 특허분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방 텍사스 동부지법에서 진행된 특허소송의 85%(522건), 연방 텍사스 서부지법에서 제기된 특허소송의 90%(467건)가 NPE에 의한 소송이었다.
텍사스 동부지법 마셜지부 위치
텍사스에 본사를 두지도 않은 한국 기업들이 유독 이 지역에서 자주 NPE에게 공격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고 기업의 일정하고 확립된 사업장이 있는 곳에서는 재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미 법원 판례가 첫 번째 요인이다. 2017년 5월 미 연방대법원은 ‘티씨 하트랜드(TC Heartland)’ 판결을 통해 “특허침해소송은 피고 업체의 법인이 설립된 주에 제기해야 한다”며 소송 제기 가능 지역을 제한했다. NPE들의 무분별한 ‘포럼(Forum, 법원) 쇼핑’에 제동을 건 것이다.
다만 판결의 적용 대상에 대해 “미국 내 법인에만 적용된다(As applied to domestic corporations)”고 명시함에 따라 미국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에 대한 NPE의 소송 제기가 주춤할 거란 기대와 함께, 미국 내 설립 주소지가 없는 외국 기업은 NPE 공격에 더 취약해질 거란 우려가 나왔다.
같은 해 9월 특허전담 항소법원인 미 연방항소법원(CAFC)은 특허소송 재판지와 관련해 보다 확립된 판결을 내놨다. 특정 지구의 연방지방법원이 특허소송 관할권을 갖기 위해선 ① 해당 지구에 물리적인 장소(physical place)를 가져야 하며, 그 장소는 ② 정기적이고 확립된 사업장(regular and established place of business)이자 ③ 피고의 장소여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 판결에 따른다면 텍사스 동부지구에 대리점 등 일정한 사업장이 있는 기업은 특허침해소송 피고가 될 수 있다. 이에 애플은 NPE 피소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2019년 이 지구에 있던 매장 두 곳을 철수하고 직원들을 인근 댈러스로 전근시키기도 했다.
특허권자에 친화적인 판사의 성향도 NPE들의 소송이 이 지역으로 몰리는 요인이다. 연방 텍사스 동부지법의 관할지 중 한 곳인 마셜(Marshall)은 인구 2만3000명의 소도시이지만 특허 소송의 세계에선 ‘거인’이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위치를 갖는다. 텍사스 언론 ‘댈러스 모닝 뉴스’에 따르면, 2011년부터 마셜지구를 담당해온 로드니 길스트랩(Rodney Gilstrap) 수석판사에게 미국의 모든 특허 사건 4건 중 1건이 배정될 정도였다. 이 법원은 무분별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는 특허권자에게 지나치게 치우친 판결을 내린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안토닌 스칼리아 전 미 연방대법관은 생전 마셜 지구를 두고 “변절자 관할권(renegade jurisdiction)”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을 불신하고 소기업에 친화적인 평결을 내리는 마셜 지역 배심원단의 특성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마셜은 한때 철도 교통 중심지이자 목화 재배로 부흥했으나 산업 지형 변화를 거치며 점점 경제적으로 낙후됐다.
하지만 20여년 전부터 특허소송이 몰리며 재판을 위해 도시를 찾은 법조인과 기업인들 덕에 숙박업과 요식업 등 지역 경제가 ‘특수’를 누리게 됐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자연스레 소송을 제기하는 쪽인 NPE 등에 친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백인이 70%를 차지하는 인구 구성도 삼성, LG 등 아시아 대기업보다는 미국 국적의 NPE에 기울기 쉽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홍윤지, 이순규, 안현, 이진영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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