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싫다."
한국의 4·10 총선과 미국의 11월 대통령 선거의 공통점 중 하나는 ‘더블 헤이터(double hater)’ 판세다. 더블 헤이터는 두 명의 후보나 정당 모두를 싫어하는 유권자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 용어는 투표 직전까지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중도층과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인 개념이 다르다. 중도층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가 없더라도 자신이 관심 있는 정책 등에 따라 투표하지만, 더블 헤이터의 판단 기준은 ‘누가 더 싫은가’에 있기 때문이다. 지지 후보는 없더라도 정책을 보고 판단한 중도층과 달리 ‘더 싫은’ 상대 후보의 당선을 막겠다는 이유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셈이다.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의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주요 후보나 정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높을 때라면 이들의 표심이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
선거에서 더블 헤이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붙은 2016년 미국 대선 때다. 당시 출구조사에서 두 후보 모두 싫다는 유권자는 18%에 달하면서 ‘비호감 선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미 대선은 이를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두 싫다는 더블 헤이터 비율이 4년 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미 언론이 각종 여론조사를 한 결과 두 후보 모두 싫다는 응답자의 비율은 15∼24%에 달했다. 두 후보가 앞서 맞붙었던 2020년 대선에서 같은 답변을 한 응답자는 약 5%(2020년 10월 CNN 발표 조사 기준)였다.
한국에서도 2022년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유례없는 비호감 대결을 펼친 바 있다. 한국갤럽이 선거 다음 날인 2022년 3월10일 전국 20대 대선 투표자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윤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로 ‘상대 후보가 싫어서’로 답한 비율은 17%였고, 이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로 ‘상대 후보가 싫어서’를 꼽은 응답자는 27%에 달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총선 역시 지난 대선에 이은 비호감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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