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대 대신 직무 세분화해 그룹이 일정 조정
근무 시간 유연하게 했더니…입사 지원 '쑥'
경력단절 여성→워킹맘으로 재기 성공
공장에서 유연근무를?
근무 시간과 장소를 고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는 '화이트 칼라' 직종, 즉 사무실 근로자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근무 방식이 공장에서도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곳이 있다. 바로 미국 미니애폴리스 세인트루이스에 기반을 둔 유제품 제조업 공장이다.
제조 공장이 어떻게 유연근무를 도입했을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보도에서 미국의 낙농 협동조합인 랜드오레이크스가 지난해 4월부터 공장 근로자 일부에 유연근무제를 적용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 이로인한 성과를 집중 조명했다. 회사에서 운영 중인 140개 현장 중 60곳에서 유연근무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며, 향후 수년 내에 전 공장 업무로 확대할 계획이다.
랜드오레이크스는 우유로 500파운드짜리 치즈 블록을 만드는 작업을 위해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하루에 35만파운드의 치즈를 생산한다. 전 세계가 그러하듯 이 회사도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에 나섰고 현시점에서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대체했다고 공장 관계자는 설명했다.
유연근무를 도입하기 전 이 회사는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근무 시간대를 2개로 나누고 2교대 근무조를 운영했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면서 모든 업무를 2개 근무조로 나눠 일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유연근무를 도입하면서 업무를 세분화하고 1명의 정규직이 했던 일을 2~3명이 팀이 나눠 하되 24시간 공장 가동에 문제가 없게끔 서로의 시간을 조율해가며 유연근무 할 수 있게 했다. 팀을 운영하는 관리자와 직원들은 2주에 한 번씩 근무 일정을 조율했다. 관리자는 24시간 공장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직원들을 배치했으며 공백이 생길 경우 직원들과 소통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비교적 유연근무에 적합한 업무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정확해야 하거나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 업무는 자칫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생산물을 담는 통을 관리하거나 건물 관리 업무 등에 먼저 적용했다. 뒤이어 숙련 기술이 필요한 업무까지 점차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근무 조건 못 받아들이면 떠나라'던 공장이 유연근무 도입한 이유
그동안 공장은 예전 방식대로 전체적으로 근무조를 나눠 다 함께 같은 시간에 교대하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관리가 쉽고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W.E.업존 고용연구소 소속 애런 소주너 노동 경제학자는 "역사적으로 고용주가 주도권을 갖고 있을 땐 단순하게 제도를 유지하고 싶어서 '이 일을 원하면 내가 말하는 근무 시간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떠나라'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고 미국 노동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인력 부족을 겪게 되자 이 회사도 무조건 이러한 방식을 고수할 수 없었다. 교대근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추구하는 직원들을 붙잡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신규 직원을 구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인력을 확보하려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원격근무제를 도입해 문제를 해결했지만, 생산직 직원을 위한 해결책은 모색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근무 시간을 단축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회사는 판단했다.
욘 듀베리 랜드오레이크스 최고공급망책임자(CSO)는 "스스로 '왜 6시 또는 7시에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하고 자문했다"며 "'직원들을 중심으로 일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동 인구 노령화 등으로) 매해 제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점차 줄고 있다"며 "미국의 인구 통계로 볼 때 이는 장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회사는 인력을 확보하기가 더 유리해졌다고 한다. 유연근무가 가능한 일자리 1개 공고를 내자 100명 넘는 지원자가 신청했다. 유연근무 도입 이전 26개 정규직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다.
듀베리 CSO는 회사가 한 명의 정규직 직원을 위해서는 2~3명의 유연근무 근로자가 필요하고 그만큼 교육을 위한 비용이 필요하며 매주 근무 일정을 조정하느라 관련 비용이 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 근무 제도로 직장에 남아있는 직원이 늘고 초과 근무 수당은 오히려 줄어 관련 비용이 덜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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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세 자녀가 있는 가렛 넬슨-레이븐 넬슨 부부는 둘 다 일하면서 양육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기존 제도로는 남편 만 일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4월 유연근무를 적용한 직무가 생기면서 아내도 일을 시작했고, 두 사람이 서로 일정을 조율할 수 있게 됐다. '워킹맘' 넬슨 씨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것이 일하는 부모에게는 최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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