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그룹의 ‘출산지원금 1억원’ 지원을 둘러싼 관심이 커지면서 기업의 선의에 정부가 ‘하이에나 세금’을 매긴 사례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수원교차로 창업자인 황필상씨의 사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후손인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의 사례 등 공익적 기부에 수백억 원, 수십억 원대 세금 폭탄이 매겨지는 것은 기업과 자산가의 공익 기부를 막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국 중 유일하게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편법 상속·증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을 고려하면 쉽게 풀어내기 힘든 규제이지만 현실적인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 제기된다.
"호주나 영국에서 태어나지 못해 훈장은커녕 고액 체납자란 오명만 쓰고 있다." 180억원을 공익법인인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140억원의 증여세를 물게 돼 소송전 끝에 간신히 인정받은 황 창업자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대주주가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할 때 전체 발행 주식의 5% 초과분에 최고 60% 상속·증여세를 물게 한 당시 법 때문이다. 2008년 세금 폭탄을 맞은 그와 재단은 2009년부터 지루한 소송전을 벌인 끝에 2017년 대법원에서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가 사례로 든 영국, 호주 등은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 전 총장의 경우, 김구 선생의 항일 투쟁 역사를 알리기 위해 해외 대학에 42억원을 기부했지만 해외 대학은 공익재단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손들이 27억원의 상속세(9억원)·증여세(18억원) 폭탄을 맞아야만 했다. 이후 조세심판원을 통해 증여세를 절반으로 줄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세금이다.
이들은 기업가나 자산가의 선의에 대해 현행법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 재단이나 당사자, 후손들이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케이스다. 부영이 ‘출산지원금 1억원’을 지급하려 했다가 세금폭탄을 맞을 뻔했던 것과 오버랩된다.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기부자의 선의에 기대는 측면이 많고, 아직 제도적으로 기부를 독려하는 장치는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제도가 기부 활성화를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 기부의 주요 통로 중 하나인 공익법인의 주식 취득·보유 규제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달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공익법인 법제 연구’ 보고서에서 "공익법인의 긍정적인 효과나 기능보다는 부정적인 효과나 기능에 집중해 규제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020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공익법인이 보유한 국내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공익법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입법에 투영된 것이라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또 공익법인이 내국법인 주식의 10% 이상(의결권 미행사 시 20%)을 취득하면 초과분에 증여세를 부과하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이 한도가 5%에 불과하다.
이는 주식발행 총수의 50%까지 취득 가능한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독일 역시 공익재단은 피상속인이 공익법인, 자선법인, 교회법인 등에 증여한 재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비과세하고 상속 후 2년 내 그 재산을 공익법인에 출연한 경우 이미 발생한 상속세가 소멸된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옛 페이스북) 등의 창업자들이 공익재단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김 전 총장처럼 공익법인이 아닌 곳에 기부하는 경우에 대한 비과세 예외규정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0년 보고서에서 김 전 총장 사례에 대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증세법) 규정에 비과세 요건을 규정하는 예외규정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상증세법은 조세 회피 목적이 없는 공익 기부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를 비과세하면서, 조세 회피 목적이 없는 공익 기부의 인정요건을 ‘상증세법이 정하는 공익법인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기부하는 경우’로 엄격히 한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도 자산가들의 기부 활성화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원석 한국세무학회장은 "고액 자산가들의 기부를 좀 끌어내기 위한 세제 측면의 인센티브를 어떻게 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한 부분"이라며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하고, 이론적으로도 더 탐구해 기부 문화를 형성하고 기부 의사를 끌어내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제 당국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선의’에 일률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기업이 그런 (저출생)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복리후생 성격으로 지급하는 것에 세금을 물리는 게 맞냐, 그래서 기부 효과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정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게 정말 복리후생적인 차원에서 지급이 된 건지 아니면 실제로는 급여인데 지출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면서 "악용의 여지가 있는 만큼 세법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회사에만 세제 혜택이 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을 키울 수도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2022년 귀속 근로소득 중 비과세 출산보육수당을 신고한 근로자는 47만2380명, 총신고액은 3207억원으로 1인당 평균 67만9000원을 기록했다. 연간 비과세 한도(120만원)에도 못 미치는 근로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부영의 ‘1억원 출산지원금’ 같은 사례는 극소수에만 한정된다는 것이다. 기업계가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공익법인 역시 편법 증여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혹의 시선을 꾸준히 받고 있다.
세종=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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