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리치몬드 연은·듀크대 조사
인플레 둔화 이끈 노동 공급 회복세도 약화
올해 미국 기업 절반 이상이 제품 가격을 인상하기로 하면서 고물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를 부분적으로 이끈 원자재와 노동력 공급 회복 흐름도 둔화되고 있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하가 시장이 기대하는 시점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2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은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연은)과 듀크대 공동 조사 결과 미국 기업의 약 60%가 올해 제품 가격 인상폭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한 2020년 이전보다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2020년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팬데믹발(發) 유동성 공급이 본격화 된 시점이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면서 기업들이 제품 가격 인상폭을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정상 수준으로 되돌릴 것인지 주목됐지만, 기업들 중 상당수는 당시보다 더 많은 가격 인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 바킨 리치몬드 연은 총재는 이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에는 대형 소매점이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었지만, 이제는 제조사가 소매점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형 소매기업들이 제조사에 할인폭 확대를 압박하고 있지만 협상력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약화됐다"며 "소매기업들은 공급업체(제조사)와 운송비, 인건비, 반(反)세계화 등과 관련해 많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소매기업들이 가격 인상과 관련해 (제조사와) 협상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조사들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으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미국 최대 소비재 기업인 P&G는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 후 "공급망과 비용 전반에 걸쳐 노동력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대형 소매기업들이 '갑(甲)'의 위치에서 제조사의 가격 인상폭을 제한할 수 있었지만, 제조사에 대한 협상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물가가 치솟자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데 익숙해진 측면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관건은 제품 가격 상승이 소매판매 둔화로 이어지느냐다. 바킨 총재는 소비자들이 제품 가격 인상에 반응해 구매를 줄이느냐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제품 가격 상승에도 소매판매가 줄지 않는다면 기업의 가격 인상, 고물가 지속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어 우려된다. 인플레이션이 Fed의 목표치(2%)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23년 만에 최고 수준인 현재 미국 기준금리(5.25~5.5%) 인하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역시 전날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 가능성과 함께 인플레이션 반등 우려를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된 것은 원자재와 노동력 공급이 개선된 데 기인했는데, 올해는 비슷한 수준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워 물가가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여력이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매체는 "많은 근로자들이 2022년과 2023년 노동시장에 합류하기 위해 부업에 나섰고 이는 노동력 부족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임금 상승 하향 압력으로 작용했다"며 "하지만 추가적인 (노동력) 공급 없이는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바킨 총재는 "이제 인플레이션이 둔화됐고,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국면은 아니다"라면서도 "물가는 여전히 많은 경우보다 높고, 이는 여전히 사람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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