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의 3대 지수는 16일(현지시간) 보합권에서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4%대를 다시 돌파한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 당국자로부터 매파(통화긴축 선호) 발언이 추가되면서 시장 하방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주에는 기업 실적, 경기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소비지표 등도 잇달아 발표될 예정이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블루칩 중심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 대비 231.86포인트(0.62%) 내린 3만7361.12에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중심의 S&P500지수는 17.85포인트(0.37%) 내린 4765.98,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28.41포인트(0.19%) 하락한 1만4944.35에 장을 마감했다.
S&P500지수에서 기술 관련주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업종이 모두 하락했다. 특히 에너지 관련주의 낙폭이 두드러졌다. 애플은 중국 시장에서의 할인 소식으로 아이폰 판매 둔화 우려가 부각되면서 2% 이상 내렸다. 테슬라는 전날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25%의 의결권을 원한다고 밝힌 후 1%대 하락했다. 스피릿항공은 미 연방법원이 제트블루의 인수에 제동을 걸면서 50% 가까이 폭락했다. 오는 30일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엔비디아는 3% 뛰었다. ADM 역시 반도체 수요에 대한 낙관론에 힘입어 8%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소매판매 등 이번주 예정된 경제 지표 발표를 앞두고 지난주 후반 대형은행들을 필두로 시작된 지난해 4분기 기업 실적, 국채 금리 및 유가 움직임, Fed 당국자 발언 등을 주시했다. Fed 내 대표적 매파 인사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는 이날 "이번 사이클에서 빨리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고 밝히면서 오는 3월 인하를 기대해온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한 그는 최근 미 경제가 성장과 고용이 견조한 가운데서도 인플레이션은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lmost as good as it gets)"고 평가했다. 다만 "이것이 계속 지속될지는 의문"이라며 Fed 당국자들은 금리 인하 전 인플레이션이 2% 목표 달성을 위한 궤도에 있다는 추가 증거를 확인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전까지 많은 사이클에서 금리 인하는 비교적 빠르고 큰 폭으로 진행됐으나, 이번 사이클에서는 빨리 금리를 내릴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즉각 높은 수준의 금리가 예상보다 더 길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강화시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선물시장은 현재 Fed가 1월 동결 후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25%포인트 이상 인하할 가능성을 65%가량 반영 중이다. 이날 월러 이사의 발언이 공개되기 전 72% 선에서 약화됐다. 투자은행 에버코어ISI의 크리슈나 구하 분석가는 투자자메모를 통해 "우리는 이날 월러 이사의 발언을 3월 금리 인하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며 "5월 또는 6월에 첫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우리의 전망과 일치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이에 앞서 유럽에서도 당국자들로부터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약화시키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에 참석한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의원 프랑수아 빌레로이 드 갈라우는 "승리를 선언하기에 너무 이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위스쿼트의 이펙 오즈카르데스카야 수석분석가는 "올 1분기에는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회복력 있는 성장, 탄탄한 고용시장, 대선까지 이어지는 재정지출 등으로 오는 3월 Fed의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채 금리도 조기 금리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이날 계속 오름세를 보였다.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금리는 4.06% 선,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금리는 4.22% 선으로 올랐다. 주요 6개국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달러화지수)는 0.9% 이상 상승한 103.3선에서 움직였다.
투자자들의 눈길은 이번주 공개되는 소매판매, Fed의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 등에 쏠린다. 소매판매 지표는 미 실물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버팀목이자 종합적인 경제 건전성을 평가하는 척도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소비자 지출이 여전히 탄탄한 수준을 나타낼 경우 이는 당분간 높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매파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다. Fed 내 3인자인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 등의 연설도 주중 예정돼있다. 앞서 보스틱 총재는 금리 인하가 오는 3분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기업 실적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후반 JP모건체이스, 시티 등은 엇갈린 성적표를 내놨다. 이날 개장 전에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가 예상을 상회하는 실적을 각각 공개했다. 이날 뉴욕 연은이 발표한 엠파이어스테이트 제조업 지표는 -43.7로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는 중동발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달러화 강세로 소폭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28센트(0.39%) 하락한 72.4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