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AMAT, SMIC에 반도체 장비 공급했나
해마다 규제 늘리는 미국…중국 대응도 진화
커지는 미 압박 속 중국 자급률 향상 우려
지난주 미국 반도체 장비 기업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중국 SMIC에 장비를 무허가 판매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SMIC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으로 2020년 12월부터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고 있는데요, AMAT가 규제 적용 후인 2021년과 2022년에 미 상무부 허가 없이 한국 자회사를 통해 장비를 SMIC에 공급했다고 합니다.
만약 이같은 소식이 사실이라면 미 제재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일 겁니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꺾기 위해 해마다 각종 규제를 더하고 있지만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거죠. 지난 8월 화웨이가 미 압박에도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첨단 공정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자사 최신 스마트폰(메이트60 프로)에 탑재한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일 수 있습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여러 노력에도 체면을 구기는 이유가 뭘까요? 반도체 업계에선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을 외면할 수 있는 업체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AMAT만 보더라도 지역별로 봤을 때 중국 매출액이 가장 많습니다. 올해 전체 매출 대비 중국 비중이 27%에 달했답니다. 2021년(33%)과 지난해(28%)를 포함해 계속 30% 안팎의 비중을 보이고 있죠.
이가 없음 잇몸으로라도 살겠다는 듯 몸부림치는 중국 행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구형 반도체 장비로 어떻게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가 하면, 미 규제 시차를 틈타 각종 반도체 제품과 장비를 사들이는 일도 벌이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 하원에선 올해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동맹국인 네덜란드와 일본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상반기에 해당국의 반도체 장비를 사재기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내놨습니다. 중국 텐센트는 이달 실적 발표 자리에서 미 규제가 적용되기 전 엔비디아의 AI용 반도체(H800)를 빠르게 주문해 재고를 많이 쌓아뒀다고 밝히기도 했죠.
여기에 거대하고 복잡한 반도체 공급망이 글로벌 단위로 형성돼 있는 점, 각국이 반도체를 경제·안보 자산으로 여기고 관련 산업을 키우고 있는 점 역시 한 국가의 일방적인 규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겁니다. 여러모로 미국이 세계 패권국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쉽지 않은 항해를 하는 것처럼 보이네요.
이 과정에서 자칫 중국의 반도체 자립 속도만 빨라지게 하는 것은 아닐지 우려됩니다. 관련 전망을 담은 각종 보고서도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코트라(KOTRA)는 '중국 반도체 산업 현황과 육성 정책' 보고서에서 중국이 지속적인 반도체 투자를 통해 관련 기술력과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죠. 또 "(중국이) 10㎚ 이하 첨단 칩 개발에 필요한 기술, 장비 소재, 확보에 집중할 것"이라며 "자율주행 반도체 등 중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서 해외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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