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은 '자기 결정권' 중요
근로시간 개편 논의시 핵심사안
현대 직장인이 바라는 일과 생활의 균형, 즉 ‘워라밸’은 일에 쫓겨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일명 ‘시간빈곤(Time poor)’에서 탈피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이 개념은 임금 노동이나 가사·돌봄 노동으로 자유시간이 부족해 시간 사용의 자기 결정권이 부족한 현상을 말한다. 2014년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노동인구의 42%인 930만명이 이 시간빈곤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정부가 8개월 만에 다시 근로시간 개편안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부안이 과연 시간빈곤을 해결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일단 그동안의 거센 반발을 잠재우고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기 위해 갖춰야 할 요인을 살펴보자는 입장이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올해 내내 시간 총량에 갇혀있던 획일적이고 경직된 연장 근로 체계를 유연하게 바꾼다며 개편안을 검토해왔다. 지난 3월 유연근무를 선호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의견과 기업의 인력 활용 수요를 바탕으로 ‘일이 많을 때는 일하고, 쉴 땐 쉬자’는 취지로 한주 최대 근무 가능 시간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는 개편안을 내놨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이 없을 때는 ‘제주 한 달 살기’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반발이 쏟아졌다. 유연근무제도의 시간 결정 권한이 결국 기업에 있는 상황에서 정부 취지와 달리 주 최대 근무 가능 시간만 크게 늘어나고 되레 휴식권 등 보상은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편안대로라면 회사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는 최대 주당 69시간 근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 개편안의 핵심 쟁점은 근로시간 조정이 노사의 대등한 협상에 따라 합의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8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이 여전히 노사가 대등한 위치에 있을 수 없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 모두 기업의 의중대로 움직이는 유연근무제라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실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등한 노사 합의를 통해 자신의 의견대로 유연근무제를 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유연근무제 확대에 ‘긍정적’이라는 응답률은 61%나 됐다. 결국 시간빈곤 문제의 핵심은 노동이든 여가든 시간 사용의 결정권을 근로자 개인에게 온전히 부여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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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사회가 획일적으로 부여한 장시간 노동과 번아웃은 그동안 일과 삶의 균형을 조절할 수 없게 만들고, 결국 노동생산성의 저하로 이어져 왔다. 현대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주도권을 되찾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집중력 높은 시간에 일을 집중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함이다. 정부가 이러한 노동자들의 욕구와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지 않고 논의를 진행한다면 이번에도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8개월 만에 재개된 근로시간 개편 논의가 이번에는 사회적 합의로까지 이어질지 주목해본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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