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두 명의 국무총리 동거 체제
총리 국회 인준, 장관 청문회 낙마 등 변수
MB 주재 첫 국무회의도 참여정부 장관 참석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어색한 동거. 2008년 2월, 관가는 두 명의 국무총리와 함께했다. 법적인 신분의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실질적인 의미의 대한민국 국무총리.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 최고 권력으로 등극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시작됐지만,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새로운 국무총리와 장관들을 내정했지만, 이들이 대통령 임명장을 받고 업무를 수행하려면 국회 청문회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준 투표 대상이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첫 국무회의가 열리는 2008년 2월27일까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명박 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한승수 국무총리가 어색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장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일할 장관 후보자들은 첫 국무회의가 열렸던 2008년 2월27일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 있었다. 국회는 이날 10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를 상대로 인사청문회를 여는 등 관련 절차에 속도를 높였지만,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를 2008년 2월26일까지 마무리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일부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질 문제와 관련해 여야가 대치하면서 상황이 꼬였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상황 타개를 위해 문제가 된 일부 국무위원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청와대에 건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당의 반발을 일부 수용하는 형태로 정국의 막힌 흐름을 뚫고자 한 것이다.
2008년 2월27일 이명박 정부 첫 국무회의는 참여정부 국무총리인 한덕수 총리 주재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렸다. 권력은 교체됐는데 과거의 권력이 현재의 권력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한 셈이다. 국무회의 성립 요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와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2008년 2월27일 자진해서 사퇴했다. 야당의 사퇴 압력을 받았던 후보자들이 물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이들이 사퇴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지도부의 건의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 난제를 떠안으며 출범했지만, 여당 지도부의 정치력을 토대로 상황을 돌파했고, 청와대가 큰 틀에서 여당 대표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08년 3월3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첫 국무회의가 열렸다. 2월27일부터 3월3일 사이에 한승수 국무총리 임명을 비롯해 주요 장관 임명이 이어지면서 이명박 정부는 새 진용을 갖춰갔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어색한 동거 상황은 계속됐다. 일부 국무위원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낙마하면서 국무회의 구성 요건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 등 4명의 참여정부 국무위원들이 이명박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 국무위원으로 참석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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