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전문가·공론조사 선거개혁 동력 가능
"국가적 의제 다룰 비례대표 강화해야"
"이번에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국회가 전원위원회를 열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전원위를 열기 전에 굉장히 많은 사전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지난 1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전원위에 대해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국민적 관심도나 해법 모색 측면에서 너무나도 아쉬운 것이 많았다"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국회는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나흘간 전원위를 소집해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국회의원 100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원위가 20년 만에 열려 관심이 쏠렸지만 방향 없는 난상토론, 100명이 제각각 목소리만 낸 백가쟁명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선거제도 개편의 돌파구로 여겨졌던 전원위의 흥행 부진의 근본 원인을 준비 부족으로 설명했다. 이 교수는 "전원위는 사실상 합의가 이뤄졌지만 절차 등 제약으로 진행하지 못한 채 막혀 있던 것을 의원들 발언과 토론 등으로 합의를 확인하는 형식이었어야 했다"면서 "이를 통해 '사실은 우리가 합의가 어느 정도 있구나'를 의원들이 확인하고, 당리당략을 벗어놓자고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고 평가했다. 전원위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뒤 결심이 필요한 순간, 최종적인 정치적 돌파구를 찾는 카드였어야 하는데 논의의 장으로만 활용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남은 선거구 개편 논의에 대해선 야합의 유혹을 이겨내고, 전문가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제 적당한 선에서 졸속으로 야합하고 싶다는 유혹이 올 시점"이라면서 "'전원위까지 해봤는데 별수 없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나오면 양당 지도부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자는 유혹이 커질 텐데, 이런 식의 선거법 개정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본다. 선거법 개정 시한이 지났다는 핑계나 불확실성을 확실하게 없애고 싶은 마음에 작은 수준의 변화나 시범 실시 정도로 졸속 합의하는 게 가장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합의가 미리미리 됐으면 좋겠지만 기왕 이렇게 됐으니 정개특위에서 이달 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가 조사 결과 등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정치학자와 법학자 등 선거 제도와 관련된 전문가 등으로부터 이달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다.
그는 "전체 대상이 2000명이 넘는데 응답 인원이 50%만 돼도 1000명이 될 것이다. 1000명 이상의 정치학자, 법학자들이 의견을 낸다면 귀 기울여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개특위는 또 국민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론조사와 숙의형 공론조사 등을 진행한다. 특히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선거제도 관련 정보를 제공받은 뒤 토론 등을 거쳐 의견을 정하는 숙의형 공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정치권 역시 주목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전문가나 국민들이 각론은 다를 수 있지만 큰 원칙의 틀은 나올 텐데, 정치권이 이를 기다렸다 어떻게 관철할 것인지에 대해 맞대고 토론을 한다면 5, 6월에 여야 합의로 처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 초창기부터 국회 등에서 열린 각종 토론회 등에 참석해 지방소멸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소멸 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소선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인구 비례(소선거구)를 보완할 수 있는 상원 등의 제도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단원제로 인구 비례로만 의회가 구성돼, 지역소멸에 대해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소멸과 관련해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지방의 대표성을 높이는 방법과 함께 지역 소멸이나 기후 위기, 청년 실업,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국가적 의제에 관심을 갖는 의원들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면서 "비례대표 의원들이 늘어나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비례대표제 강화가 지방소멸을 넘어 국회적 의제 등을 정치권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비례대표제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각 정당이 비례대표제를 잘못 운용한 결과로 인한 것"이라면서 "현재는 비례대표 한번 하고 지역에 가서 국회의원 해야지 하는 논리가 나오는데, 그것은 비례대표를 마치 수혜처럼 생각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당은) 비례대표를 잘못 운영하지 않겠다고 바로잡고, 전문성을 길러낼 수 있도록 비례대표끼리도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하며, (잘하면) 비례대표 재선, 3선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가 늘어나 의석수 100석이 넘는 정당들에서 비례대표가 30~40석 정도가 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각 당 정책위원회가 운영되고 현안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며 "(국가적으로 볼 때) 전문성을 가진 비례대표가 재선, 삼선을 한다면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외교 역량이 있는 사람이 외교통일위원장을 하고, 기후 위기에 정통한 사람이 환경노동위원장을 맡을 수 있게 된다면 국회는 정말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가 충분히 늘어나며, 이들이 지역구에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정책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면 왜 비례대표가 욕을 먹고 쓸모없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오겠냐"고 반문했다.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도 "정치권에서 비례대표 등과 관련해 (비례대표에 부정적인) 여론조사를 얘기하는데, 전세계에서 여론조사로 국회의원 늘리면 좋겠다고 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냐"며 "비례대표와 관련된 악습이 있는데도 이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으니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대로 된 정보 등을 듣고 논의할 수 있는) 공론조사 등을 거치면 이에 대한 국민들의 뜻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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