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5층의 한 법정. 60대 남성이 방청석에서 일어나 피고인석에 선 아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아버지인 자신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아들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앞서 부자(父子)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아들은 약 10년 전부터 정신질환으로 통원 치료를 받아 왔다. 두 사람은 당구장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경영 상황이 나빠졌다. 당구장을 넘길 새 임차인을 찾아 나섰지만, 건물주가 훼방을 놨다. 이 일로 부자는 건물주와 민사소송까지 벌이게 됐다.
하지만 소송 문제로 아들의 정신질환이 급속도로 악화했다. 지난해 5월11일 오후 6시 아들은 아버지와 소송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순간적으로 분노를 억제할 수 없게 됐다. 자신이 모두에게서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들은 "죽여버리겠다", "다 죽어야 끝나는 일"이라며 아버지를 구타한 뒤 숨을 쉬지 못하게 하거나, 유리로 된 물건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와 다치게 하기까지 했다. 다만 가정도우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아버지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지난 1심은 아들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우선 "(주치의 진술 등에 따르면) 피고인은 범행 당시 정신질환으로 '심신미약' 상태에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피고인은 이 사건 3~4일 전부터 약을 먹지 않았고, 잠도 잘 자지 못해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범행 당시 피고인에게 자신의 아버지인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동기를 특별히 찾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입원 시 상당히 흥분 상태에 있었으나, 입원 후 치료로 많이 안정적인 상태가 됐다'는 병원 주치의 설명도 함께 전했다.
양형 이유에 대해선 "피고인 행위의 위험성에 비춰 죄질이 좋지 않다.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상당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신질환에 따른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뤄졌고, 다행히 범행이 미수에 그쳐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피해자는 피고인의 치료를 다짐하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실형 선고 대신 "피고인은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심신장애 상태에서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 범행 경위와 동기, 전후 행동, 심신장애의 원인, 치료 경과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게 통원치료를 받을 필요성과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며 보호관찰 및 치료 명령을 부과했다.
검찰이 1심 판결에 불복하면서. 아들은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됐다.
아버지는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도 아들과 함께 법정에 나왔다. 그는 "(실형이 선고돼) 들어가면, 쟤(아들)도 불행하지만, 저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거듭 부탁드립니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해달라고 요청했다.
항소심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이창형 부장판사)는 아들의 변호인에게 "최근까지의 병원에 간 기록과 처방, 약 복용량 등을 빠르게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변론 절차를 마무리하고, 오는 23일 김씨의 2심 선고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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