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 이규서 예술감독
슈만 교향곡 제1번, 봄의 기쁨 담은 작품
“젊은 지휘자 설 수 있는 기회 부족 아쉬워”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설득의 심리학’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설득에 앞서 상대의 호의를 이끄는 관계성에는 ‘그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 보다 ‘그는 우리 사람’이 더 강력하다고 정의한다. 지휘가 무엇인가를 묻자 곧장 “설득” 이라고 답하는 이규서 오케스트라 앙상블 서울(OES) 예술감독은 비슷함을 내려놓고 탄탄한 연대에 기반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그 과정은 설득의 연속이지만, OES의 무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2018년부터 민간 오케스트라 최초로 베토벤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 전곡 시리즈 완주를 마친 OES는 슈만 교향곡과 협주곡 전곡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OES는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국내에서도 완주한 악단은 손에 꼽을 만큼 슈만 교향곡은 까다로운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미세한 음정변화와 급변하는 뉘앙스까지 슈만 특유의 감정기복과 서정성 때문에 온전한 느낌을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4년에 걸친 베토벤 시리즈 대장정을 마치고 곧장 슈만 시리즈에 도전하는 배경에 대해 이 지휘자는 “베토벤은 챔버오케스트라에게 한번은 넘어야하는 산이고 실력을 다지는 도전이었다면, 슈만은 그 동안 다진 실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도전과 증명은 그의 이력과도 맞닿은 주제다. 5세 때 바이올린으로 음악에 입문한 이 지휘자는 구청 청소년교향악단 악장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접한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필하모닉 송년음악회가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바이올린 현악 부분을 참고하려고 영상을 보는데 100여명의 단원이 아바도의 손끝에 일사불란하게 호흡을 맞추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 어떤 확신을 받았다.”
인문계 고교에 재학 중이었지만 지휘자를 목표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 그는 뜻밖의 사건으로 포디움에 서게 된다. “음대 심포니오케스트라의 2012년 겨울 정기연주회 준비 기간이었는데 임헌정 교수님께서 단체 연습 중단을 선언하셨다. 공연일은 다가오는데 지휘자 없이 연습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 되니 1학년인 나한테까지 제안이 오게 됐다” 그렇게 오른 무대를 본 임 교수로부터 “봐줄 만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을 계기로 졸업생끼리 모여 1년에 한 번이라도 연주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이를 계기로 2014년 OES가 창단됐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이 지휘자는 챔버 오케스트라의 매력으로 ‘투명함’을 꼽았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들으면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설계도를 보는 듯한 음악을 통해 안 들리던 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소개한 그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에선 실수도 묻힐 수 있지만, 챔버 오케스트라에선 숨을 곳이 없으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점도 독특한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OES는 이번 공연에서 슈만 교향곡 제1번 내림나장조 작품번호38 ‘봄’과 함께 낭만주의를 상징하는 작곡가 멘델스존의 기념비적 작품인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를 선보인다. 슈만 교향곡 제1번은 클라라와 결혼한 직후에 작곡된 곡으로 ‘인생의 봄’을 맞이한 청년 슈만의 행복이 담겨있다. 이 지휘자는 “봄의 시작을 알리듯,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시작하는 이 곡은 봄의 따스함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지휘자가 설 수 있는 무대와 기회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도 전했다. “지휘자 한 사람이 갖는 영향력은 정말 크다. 좋은 지휘자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오케스트라인데, 젊고 실력을 갖춘 지휘자가 악단을 설득하고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이끌어 내려면 기회가 많아져야한다. 악단들이 지휘자 양성에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20대 초반 선후배들 45명이 모여 뜻을 모은 OES는 내년이면 창단 10년을 맞는다. 이 지휘자는 “단원들이 모두 적(籍)을 두고 다양한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1년에 두 번 모이는 것도 조금씩 힘들어지고 있다”면서도 “더 폭넓게 챔버 오케스트라가 선보이는 선율의 매력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곧 60주년을 맞는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처럼 오랜동안 함께 쌓아온 음악을 선보이는 악단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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