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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프레임] 코로나 시대와 함께 '쉰'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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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프레임] 코로나 시대와 함께 '쉰'이 왔다 2020년 5월 청산도. 나의 시간은 오후 세시다. 해 지기 전 내게 남은 몇 시간을 온전히 내 작업에 쏟아 부어야지라고 다짐해본다. (제공=조아조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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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내 인생은 참으로 찬란했다. 하루에 두세 개씩 끝없이 이어지는 촬영과 아름답고, 멋진, 화려하기 그지없는 배우, 모델들과의 만남….


나는 그냥 모든 것을 던져 나의 삼십 대를 살아냈다. 그렇게 십 년이 훌쩍 가버리고, 삼십 대보다는 조금 덜 찬란했으나 더 깊이가 생긴 사십 대도 찬란하던 삼십 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지나가버렸다. 지난 이십 년이 거짓말처럼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내겐 오지 않을 것 같던 쉰이라는 나이가 내게도 왔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줄 알았다

설운 서른에 바라본 쉰은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다

비틀거리며 마흔까지 왔을 때도

쉰은 저만큼 멀었다.


김수열 시인의 '쉰'이라는 시의 이 구절처럼 내겐 너무 먼 나이였다. 그렇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와버린 쉰이라는 나이.


난 한 번도 직장을 다닌 적이 없기에 안정된 직장에 다닌 것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른다. 생각해보면 지난 20년을 미친년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살아온 건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이 바닥의 생존 논리와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나를 찾는 전화가 조금 뜸해지면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조선희라는 사람을 모두 동시에 잊어버릴 일이 없는데도 난 언제나 불안하고 불안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지, 또 누군가는 부담스러운지도 모르고 촬영에 몰입하고 몰입했다. 설운 서른의 나이를, 비틀거리던 마흔을 사진과 함께 울고 웃으며 써버린지라 쉰은 준비되지 않은 채 내게로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이 조선희를 잊어버린 양 내 전화기는 조용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 난 많이 불안하고 우울했을 테다.


지난 20년간 불안과 두려움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바둥거린 내가 이렇게 편안하게, 바쁘지 않은 몇 달을 견뎌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사람이, 세상이 동시에 정지해버려서 나이와 의지에 상관없이 나도 정지해버린 필드에서의 나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멈춰서서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브레이크가 없는 양 달려온 시간들이 딱 멈춰버렸으니, 자연스레 나의 앞으로의 시간들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커머셜 바닥에서 알게 모르게 소모된, 소비된 시간에서 벗어나 나의 자아와 마주한다.


[조선희의 프레임] 코로나 시대와 함께 '쉰'이 왔다


그리고 가끔 멍 때리기도 하고, 그냥 나 자신을 방치하기도 하며, 가만히 앉아있어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넌더리가 나는 그 바닥에서 그래도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 끄트머리를 꽉 잡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고, 그렇게 내게 다가올 나의 오십 대를 허비할 수 없음이 보였다.


난 이제 새로 시작한다. 처음 사진이라는 놈을 만났을 때 내가 하고 싶던 것은 순수사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때는 젊음이 있었으나 돈이 없어 밥벌이를 해야 했고, 지금껏 밥벌이는 충분히 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진이 아닌 진정 나만을 위한 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서 정지해버린 몇 달 동안 간간이 하던 작업들을 끄집어내서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실험하고 엎고 공부하고 다시 카메라 앞에 놓기를 수십 번. 풀리지 않던 매듭이 풀리며 나의 작업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심장박동 소리가 다시 빨라진다.


나의 시간은 오후 세 시다. 해 지기 전 내게 남은 몇 시간을 온전히 내 작업에 쏟아부어야지라고 다짐해본다.


우리에겐 모두 나름의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본인이 알게 모르게 소비된 시간에서 벗어나와, 그냥 멍 때리거나, 방치되거나…. 그래서 뭔가 보게 되거나, 느끼게 되거나.


자연도 우리도 너도 그리고 나도 쉬어가는 시간, 그래서… 난 요즈음 시간들에 감사한다.



조선희 사진작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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