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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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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그대로인데…배호도 로터리도 사라지고 46년 된 '삼각맨숀'만 남았네
한강-서울역-이태원 세 갈래 갈라진 길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가는 삼각지"
배호의 히트곡, 서울 나들이 필수코스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1980년 삼각지 입체교차로의 모습. 국방부 방면에서 공덕오거리 방면으로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 오른쪽 위 붉은색 벽돌건물은 당시 상명여중고입니다. 지금은 자이오피스텔과 대우월드마크빌딩이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사진=용산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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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서울 한 가운데 위치한 '삼각지(三角地)'는 한국 역사의 굴곡을 간직한 영욕의 땅입니다. 반경 200m 이내에 우리 국군을 통솔하는 국방부와 주한 용산미군기지, 영화 '1987'의 주무대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습니다. 또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며 참전국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전쟁기념관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정벌한 남이 장군도 전장으로 출전하기 전 이곳 삼각지에서 군병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모반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맞지만 '남이장군사당제보존회'가 매년 이 지역에서 당시의 출진 모습을 재현하며 장군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1974년에 건설된 용산 고가도로가 아직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방부 방면에서 공덕오거리 방면으로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위의 예전 사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지요. 당시 상명여중고가 있던 자리에는 자이오피스텔과 대우월드마크빌딩이 들어서 있습니다. [사진=문호남 기자]


◆ 한국사 굴곡 간직한 영욕의 땅 =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한강에서 서울역, 조선총독부로 이어지는 큰길인 '한강통(漢江通, 광복 후 한강로로 변경)'을 만들고, 지금의 미군 용산기지에 있던 '연병정'과 이태원 방면으로 빠져 나가는 길을 뚫는데 이 길이 삼각지입니다. 사람들이 '세 길로 갈라지는 곳'이란 뜻으로 삼각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러일전쟁 승리 후 일제가 경부선철도를 만들었고, 이 곳에 철도건널목을 설치해 마포쪽으로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삼각지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네거리였습니다. 1939년 일제가 로터리로 변경됐고, 1967년에는 입체교차로가 설치됩니다.


1957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창설되면서 미군은 일본군이 남긴 '연병정'과 병원, 각종 군사시설 등을 보수·증축해 삼각지 일대에 주둔합니다. 내년 주한미군이 평택으로 기지를 완전히 옮겨가면 이곳은 대규모 공원이 됩니다. 점령지의 아픔을 간직한 서울 중심의 알짜배기 땅이 드디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10·26 때 육군본부, 영화 '1987'의 남영동 대공분실 있던 곳
1994년 입체교차로는 철거됐지만 '배호길', '노래비' 통해 그 시절 추억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삼각지에서 역사를 보다 [그림=오성수 화백]



베트남전쟁 때는 용맹을 떨친 한국군 맹호부대의 파병 전 주둔지였습니다. 맹호부대는 1948년 삼각지에서 수도경비사령부라는 명칭으로 창설됐고, 파병 후에는 베트남 퀴논시에 주둔하게 됩니다. 이 인연으로 용산구와 퀴논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지금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시해사건 때는 김제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체포된 육군본부가 있던 곳입니다. 여기서 대각선으로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에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던 영화 '1987'의 주무대였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있습니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뀐 곳입니다.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삼각지역 1번과 2번 출구 개찰구 옆에 '배호 만남의 광장'이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만든 공간입니다. [사진=김종화 기자]



◆ 요절 가수 배호의 슬픔 간직한 '배호길' =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라는 가사로 뭇 남성들의 심금을 울린 가수 배호의 대중가요 '돌아가는 삼각지'로 더 유명한 곳입니다.


5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는 친숙한 아주 오래된 대중가요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0년대 후반의 빅히트곡입니다. KBS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 요즘 가수들이 편곡해 부르기도 했지만 원곡의 그 맛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배호의 애절함을 담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지요.


옛사랑을 찾아 삼각지로 왔던 한 사나이가 사랑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간다는 가사입니다. 1966년 이 곡이 발표됐고, 이듬해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생기면서 삼각지는 서울 구경오면 전국민이 찾는 명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통체증과 지하철 개통으로 1994년 입체교차로가 철거되고, 배호도 떠났지만 그의 노래만은 영원히 남았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 발표 당시 배호는 신장병이 이미 깊은 상태였고, 4년 뒤 2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를 잊지 못한 팬들은 6호선 삼각지역사 안에 배호의 동상과 노래그림이 있는 '배호 만남의 광장'을 만들어놓고 자주 찾습니다. 역밖에는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배호길(路)'이란 대중가수 이름을 딴 최초의 거리도 있을 정도로 삼각지와 배호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 등 배호의 히트곡은 지금도 노래방에서 18번으로 애창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29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가수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입니다. 노래비 뒤로 국방부 청사가 보입니다. 삼각지역 14번 출구에서 삼각지 치안센터로 건너가는 교통섬 위에 있습니다. [사진=문호남 기자]



◆ 느리게 흐르는 한 편의 다큐같은 동네 = 삼각지는 1970~80년대 서울시내에서 제법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1972년에는 당시로선 드물었던 6층 짜리 주상복합형 아파트인 '삼각맨숀' 세 동이 들어섭니다. 당시 이 아파트는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로 알려질 정도로 근사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무려 46년이 지난 지금은 낡은 모습으로 남아 옛모습을 찾는 사진가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습니다.


삼각맨숀이 자리잡은 그 길이 '배호길'입니다. 지금은 새주소로 바뀌면서 '한강대로 62길'이 됐습니다. 삼각지에는 이름난 식당도 많습니다. 대구탕이 특히 유명한데 대구탕골목이 별도로 있을 정도입니다. 원조 '원대구탕'과 배호길 입구의 '평양집', 길건너 돼지고깃집 '삼각정'과 '김용안과자점'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김용안과자점은 1967년부터 지금까지 성업중입니다.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만들어진 그해 함께 영업을 시작한 것이지요.


1972년 만든 6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삼각맨숀'과 초고층 아파트의 앙상블
한국 근현대사 다큐영화 속으로 초대


1980년 당시 삼각지 입체교차로 사진을 보면 오른쪽 상단 붉은색 벽돌의 상명여중고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자이오피스텔 등 고층빌딩들이 버티고 서있습니다. 입체교차로를 없애야 할 정도로 극심했던 당시의 교통체증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1974년 철도를 가로질러 입체교차로와 연결됐던 용산 고가도로가 확장없이 그 시절 그대로이기 때문일까요.

[한국의 골목길]돌아가는 삼각지와 배호길 삼각맨숀은 1972년 당시에는 드물었던 6층짜리 멋진 주상복합형 아파트였습니다. 46년 동안 '배호길'에서 삼각지 사람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사진=문호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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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를 걷다보면, 한국 현대사의 쓰린 기억들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낡은 삼각맨숀과 하늘 높이 치솟은 최신 빌딩의 대비되는 모습은 국민의 뜻과 조화되지 않고 겉도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마주보고 있는 넓다란 미군기지와 비좁아 보이는 국방부 청사는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느끼게 합니다.


길건너 후미진 곳으로 숨어든 듯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경찰청 인권센터의 모습은 잘못된 권력에 길들여진 시간을 반성하게 합니다. 전쟁의 아픔, 힘없는 나라의 설움, 잘못된 정치의 결과까지. 지난 50여년 우리 역사의 장면들을 한 편의 늘어진 다큐영화처럼 보여주는 동네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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