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ㆍ주식시장 "대법이 시장에 혼선 줘" 지적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대법원 1부는 지난 6월 15일 한국투자증권이 도이치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려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같은 날 대법원 2부에서도 같은 취지의 판결이 나왔고, 보름 뒤에는 다시 대법원 1부에서 같은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7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앞선 사건과 달리 김모씨 등 개인투자자 17명이 도이치뱅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판단이 달라진 핵심 쟁점은 민법상 ‘피해자가 불법행위의 존재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인 단기 소멸시효가 지났는지 아닌지 여부이다.
도이치은행의 ‘주가조작’ 사건은 8년전인 지난 2010년 11월 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주식시장은 도이치은행이 장 마감 10분을 앞두고 쏟아낸 1조3000억원에 달하는 매물로 일대혼란에 빠졌다. 그 10분 사이에 주가는 50포인트나 급락했고 국내 투자자들은 수천억원대 손실을 봤다.
‘옵션만기 쇼크’라고 알려졌던 이 사건은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독일의 투자은행인 도이치은행의 ‘작전’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듬 해 2월 도이치은행에 6개월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면서 국내법인과 홍콩법인, 이사 등 주요직원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그해 8월 이들을 시세조정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무려 4년을 끌었고 지난 2016년에야 겨울 1심 판결(유죄)이 나왔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형사 1심이 선고된 직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검찰이 기소를 결정한 2011년 8월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됐다고 보면 이미 시효가 끝났지만 1심 판결이 내려진 2016년 1월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고 보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대법원의 판단도 여기서 엇갈렸다. 지난 6월에 나온 세 사건에서는 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한 반면 7월 판결에서는 남아있다는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시장도 혼선을 빚고 있다. 마치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해 구제를 받을 수 있수 있는 것처럼 소문이 와전되는 양상도 벌어졌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개인이냐 금융기관 등 기관이냐에 따라 소멸시효 기산점 등 판단기준을 달리해 온 기존 판례에 따른 것이라면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기관은 금감원 고발시점이나 검찰 기소시점에 손해의 발생을 알 수 있지만 개인은 법원의 판결 등 확정된 판단이 나온 뒤에야 손해의 발생을 인지할 수 있다는 판단인 셈이다.
하지만 법조계와 주식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형식상 개인이기는 하지만 투자규모나 활동내역을 볼 때 금융기관 못지 않은 투자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개미투자자라면 모를까 전문적인 개인투자자를 기관과 달리 볼 이유는 없다며 “대법원의 해명이 궁색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도이치은행 주가조작 사건처럼 전문적인 기법이 동원되 합·불법 평가가 엇갈린 사건에서는 금감원 고발이나 검찰의 기소와 같이 법적 평가가 내려지기 전 행정기관의 판단을 시효의 기산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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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현직 변호사는 “대법원은 엇갈린 하급심의 판단을 정리해 통일적인 법해석을 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그 역할”이라면서 “대법원이 오히려 엇갈리는 판결을 내려 시장에 혼선을 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사법농단 사건으로 추락하고 있는 사법부의 신뢰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실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장용진 기자 ohngbear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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