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으로 기자회견 "인물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어린아이가 말을 건다"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가족은 어때야 한다든가, 좋은 가족이란 어떤 것이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복수 영화들을 통해 가족의 참다운 의미를 물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56) 감독의 당부다. "가족은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억압적으로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형태의 가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가리킨 작품은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 할머니의 연금과 도둑질로 연명하는 한 가족이 빈 집에 홀로 남아 추위에 떠는 다섯 살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데려와 가족으로 맞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빈곤한 가정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현 시대에 부모·자식의 인연과 혈연관계가 무엇인지 묻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느 가족의 국내 개봉을 기념해 30일 서울 시네큐브 광화문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가족을 소재로 했지만, 인물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작품마다 내 안에서 말을 거는 상대가 다르다. 이번에는 어린아이가 말을 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너무 빨리 세상을 알아버린 쇼타 시바타(죠 카이리)와 유리다. 진짜 가족보다 단단한 결속력을 보이지만 사회에서 방치된 듯한 느낌을 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은 이들이 가혹한 세상에서 연약하게 부러지고 꺾일 수 있는 마음을 붙잡아두려고 한다. 연으로 이뤄진 가족 또한 피로 이어진 가족 못지않은 무게와 기대가 있기에 그 삶은 아픔으로 나타난다. 고레에다 감독은 "어떤 대상에 반대하거나 무엇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지는 않았다. 관객에 따라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부모가 사망했지만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부모 앞으로 나오던 연금을 받아 챙긴 사기 사건을 접하고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가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이를테면 가족의 집을 표현하면서도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담아낸다. 협소하고 지저분한 공간은 가난의 본질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타나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풍요의 원천에 가깝다. 제각각 원하는 음식을 편한 자세로 먹는가 하면, 소면을 먹다가 뜨겁게 사랑을 나눈다. 이들은 개개인의 정체성이 짙어지면서 위기를 맞이하고, 결국 붕괴된다. 이를 파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가족이기에 완수해야 하는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아하면서도 잔혹한 표현은 국경이나 문화에 구애받지 않는다. 고레에다 감독은 "저에게 절실한 주제나 모티프를 파헤치다 보면 전해질 것은 전해진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제 작품을 사랑해주는 한국과 프랑스, 캐나다, 스페인 관객의 반응을 보면 작품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고 수용해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뜨는 뉴스

그는 21년 만에 일본 영화계에 황금종려상이라는 영광을 안겼으나 일본 우익들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안보관련법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등 정부·여당의 압력을 우려하는 발언을 해 반(反) 아베 성향 인물로 꼽힌다. 작품 세계 또한 일본사회의 어두운 면을 자주 다뤄 눈엣가시 같은 인물로 찍혀있다. 이 때문인지 아베 총리는 그가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축하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도 일본 문부과학상이 만나서 축하하고 싶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정부의 축하는 영화의 본질과 상관없는 문제"라고 했다. "국회에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제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