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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3]정치 성향과 유전자의 비밀

시계아이콘03분 29초 소요

보수 '불안정' 진보 '불평등'에 민감… 행복은 여기서 갈린다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3]정치 성향과 유전자의 비밀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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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지만 아직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정치는 휘발성이 큰 주제다. 처음엔 가벼운 대화로 시작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금세 논쟁으로 비화되고 만다. 말싸움이 시작되면 설득에 성공하는 사람도, 설득 당하는 사람도 없다. 서로의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논쟁의 상대가 친구라면 께름칙한 기분은 오래 지속된다. 정치적 견해 차이는 친구의 인격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인 줄 이제 알았어!"


■투표는 스트레스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정치와 결부되어 있다. 사람들은 늘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 하며,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말과 같다. 사람들은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투표는 가장 온건하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투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당선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당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스라엘 연구팀이 2009년 총선에 참여한 유권자 113명의 코르티솔(cortisol, 콩팥의 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측정한 결과 투표소 앞에 있을 때 평소보다 3배 이상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스트레스는 선거 기간 내내 계속된다. 계속되는 상호 비방과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울려대는 메시지, 얽히고 설킨 인맥들로 인해 선택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이다. 2010년 제프리 프렌치(Jeffrey A. French) 연구팀이 미국 중서부 도시에 거주하는 유권자 345명의 투표 데이터와 스트레스 수준을 분석해보니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사람일수록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가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불안하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생각이 다를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다르다. 유전적으로 보면 진보주의자들은 DRD4-7R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이 유전자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기질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충동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2012년 여러 논문들을 메타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정치적 성향의 40~60%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행복감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뇌의 신경회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보수주의자는 오른쪽 편도체의 회색질(grey matter) 부피가 더 크다. 회색질 부피가 크다는 것은 그 부위에 신경세포가 많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2013년 남성 35명과 여성 4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인들은 오른쪽 편도체를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진은 뇌를 촬영하는 것만으로 그가 민주당을 지지하는지, 공화당을 지지하는지 82.9%의 정확도로 맞힐 수 있다고 밝혔다.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감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불안과 공포에 민감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였을 때 안정 상태로 회귀하려는 심리가 강하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왜 평화로운 시기에도 안보를 걱정하고, 사소한 사회적 분란조차 용납하지 않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용범의 행복심리학 3]정치 성향과 유전자의 비밀 그리스 신화 속 투표 장면. 영웅 아킬레우스가 죽자 그의 갑옷을 누가 차지할지를 두고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경쟁한다. 두 사람의 연설을 들은 다음 투표를 한 결과 오디세우스가 승리하자 아이아스는 “내가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라며 분노한다. 그는 결국 미쳐버린다. 이탈리아 중부의 피오라 강변에 있는 고대 에트루리아의 도시 불치에서 출토된 아테네 양식의 술잔에 그려진 그림이다.

보수주의자는 혐오감에도 민감하다. 2012년 미국인 2만558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혐오스러운 자극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이 121개국 5457명을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혐오감은 상한 음식이나 전염병을 회피하는 심리로부터 진화했다. 우리는 썩은 음식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냄새와 세균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동물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진화적으로 보면 혐오감은 자신과 집단을 오염시킬 수 있는 외부 요인들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세균을 옮길 가능성이 있는 모기나 쥐를 혐오하고, 집단을 오염시키는 동성애나 낯선 인종을 혐오한다. 보수주의자는 이러한 요소들에 대한 심리적 면역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정서를 가진 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이 극대화되었을 때 쉽게 결집한다. 2004년 미국 대선을 6개월 앞두고 다섯 명의 심리학자가 뉴욕 브루클린대학교 학생 157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절반에게는 죽음을 생각할 때의 느낌을 적도록 했고, 절반에게는 고통을 생각할 때의 느낌을 적도록 했다. 그런 다음 부시와 케리 중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물었다. 첫 번째 그룹은 대부분 부시를 선택했고, 두 번째 그룹은 케리를 선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투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실제로 9ㆍ11 테러가 일어난 지 한 달 후 부시는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우렌 크랙(Maureen Craig)의 2014년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위협받을 때 쉽게 보수화된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가한 백인들을 둘로 나눈 다음 한 그룹에는 앞으로 히스패닉 인구가 급격히 늘어 주류로 성장할 것이라는 글을 읽게 했고, 다른 그룹에는 미국 사회의 이동성(mobility)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글을 읽게 했다. 그러자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암시를 받은 사람들이 쉽게 보수화됐다. 지금까지 누려오던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불안감과 공포심을 촉발한다. 그래서 보수정당은 늘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에서 오는 위협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진보주의자는 언제 불행할까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는 어떤 상황에서 불행하다고 느낄까. 뉴욕대학 연구팀의 2008년 연구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는 소득 불평등이 심해질수록 불행하다고 느낀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 불행해진다. 하지만 보수주의자의 행복지수는 서서히 감소하는 반면 진보주의자의 행복지수는 급격히 추락한다. 공정성과 공평성이 훼손될 때 진보주의자가 더 괴로워하는 것이다.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한 935명을 30년 넘게 추적한 2005년 연구에 의하면 경기 침체기에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경기 침체기에 소득이 늘어난 이가 가장 많이 보수화됐다. 또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 소득 증가율이 낮은 이들이 진보적 성향을 띠었다. 불황기에는 가진 자들이 보수화되고, 불평등이 심해지면 가지지 못한 자들이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은 계층의 양극화뿐 아니라 이념의 양극화를 부추긴다.


정치적 견해 때문에 겪는 심리적 고통은 대부분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갈등으로 인한 것이다. 고통을 피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생각을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의 이념까지 존중할 필요는 없다. 그저 흘려듣는 것만으로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주문을 외워야 한다. "너는 짖어라! 나는 여기 없다!"


더 좋은 방법은 정치 이야기를 아예 입에 담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지할수록 더 용감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 부른다. 모든 상황에 이념적 딱지를 붙이고 입에 날카로운 송곳을 물고 다니는 사람이야말로 무지한 사람이다. 이들은 타인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은 유전적으로 타고날 뿐만 아니라 각자의 뇌 속에 단단한 프레임으로 구축되어 있다. 이 프레임은 정의나 도덕 수준의 논리로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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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란 그 사람이 수십 년 동안의 경험과 학습을 통해 만들어진 취향인 동시에, 수십만 년 동안 전수되어 온 생물학적 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논쟁과 토론을 통해 타인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짓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이 다른 사람과 논쟁할 것이 아니라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투표소로 나오게 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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