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시부모님이 30년 이상 강남에 거주했다. 현재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실거주하고 있는 보유자이고 다주택자이다. 부동산 정책 나온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에 나가서 팥빙수나 먹고 놀다 오라고 한다. 뉴스 끊어야 재산을 지킨다며, 청구서 나오면 돈 내면 되는 거고 그거 무서워서 팔았으면 어떻게 이 집을 지켰겠냐고 한다."
정부가 8ㆍ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난 2일 유명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강남 다주택자'의 모습이다.
정부는 날뛰는 부동산시장을 잡기 위해 다주택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다주택자가 서울 등 주택가격 급등의 원흉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지난 8ㆍ2 부동산 대책에서 양도소득세를 중과하는 다주택자 기준을 세대별로 산정했다. 조합원 입주권도 포함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2주택자에게도 양도세가 기본세율보다 10%포인트 더 붙는다. 청약조정대상지역 내 분양권은 무조건 양도세율 50%가 적용된다. 웬만하면 집을 2채 이상 보유하지 말라는 얘기다.
주택정책을 세우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수장인 김현미 장관은 취임식 때부터 다주택자를 부동산 과열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김 장관은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라며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부동산 과열의 주범으로 보고 있는 다주택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도 정부의 인식처럼 부동산에 목을 매 주택시장 물을 흐리는 투기꾼으로 자신들을 인식할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부동산은 가장 안전한 자산이고, 본인들은 현명한 투자자라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사회 지도층 중에 다주택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내각 구성원들은 어떨지 살펴봤다. 18개 부처의 장관(후보자 포함)과 5명의 장관급 인사를 더한 총 23명 가운데 과반인 13명이 다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의 기준대로 배우자 등이 보유한 집을 합산해서 산정한 것이다. 세법상 주택으로 간주되는 오피스텔도 포함했다.
본인 명의로만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경우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등 4명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본인 명의 아파트와 함께 분양권도 소유하고 있었다. 본인 명의로 집을 세 채 이상 보유한 장관은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경우 본인 명의 주택은 한 채이지만 배우자 명의의 단독주택 및 오피스텔, 자녀 명의의 단독주택 등 다 더하면 총 4채의 집이 있다.
다주택자 저격수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본인 명의 아파트와 배우자 명의 단독주택을 보유했다. 배우자 명의 단독주택의 경우 기준시가가 9100만원으로 1억원 미만이어서 양도세 중과 대상은 아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본인과 배우자 공동명의 아파트와 모친 명의 단독주택을 보유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도 본인 명의 오피스텔과 모친 명의 아파트가 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본인 명의 아파트와 자녀 명의 오피스텔을 보유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본인 명의 아파트 분양권과 배우자 명의 아파트를 소유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본인 및 배우자 명의로 아파트 두 채를 가졌다.
얼마 전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간부가 자녀를 강남 고액 학원에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이 간부는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에서 소통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다주택자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박민규 기자 yush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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