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청와대는 13일 미국이 한국과의 무역 적자를 이유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공식 요구한 것과 관련해 “무역 적자가 큰 것이 한미 FTA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6월 미국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분명하게 우리 입장을 밝혔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던 발언과 변화가 없다는 의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3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크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무역 적자가 큰 이유가 한미 FTA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담담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FTA 개정이 필요하다는 미국 측 입장과 달리 우리 정부는 FTA가 무역 불균형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이)FTA보다는 양국 경제 구조상에서 오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고 제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는 게 옳다”면서 “미국은 대외적자를 상당히 우려하고 무역 협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우리는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면서 “우리 입장은 무역 불균형 원인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이날 오전 우리 정부에 FTA 개정협상을 요구하면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미국산 제품의 한국수출액이 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1년 435억달러에서 지난해 423억달러로 2.7% 감소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보도자료에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2011년 132억 달러에서 2016년 276억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개최하자는 미국의 요청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현재는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아 FTA 협상에서 한국을 대표할 통상교섭본부장이 임명되지 않은 것을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별회기는 상대가 원할 경우 원칙적으로 30일 안에 개최하는 데 응해야 된다”면서 “다만 이번에는 통상본부장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개최가 힘든 상황이라는 점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위원회 개최에 응한다고 해서 한미FTA 개정협상에 동의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정 협상에 대해 협의를 하자는 게 미국 측이 보낸 서한의 내용”이라면서 “개정협상에 들어갈지 안 들어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미FTA 협정문에 따르면 공동개최위원회를 개최해도 양 당사국이 동의해야 개정협상에 돌입할 수 있고, 개정협상에 돌입하더라도 쌍방이 합의해야 FTA를 개정할 수 있다.
청와대는 이번 협상이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협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한미FTA의 틀을 바꾸는 게 아니고 일부 조항에 대해서만 개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협상을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방을 불러서 새로 하는 것을 재협상이라고 한다”면서 “미국 무역대표부는 재협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미 FTA 조문에 나오는 용어인 개정 및 수정을 쓰고 있다. (미국 측 서한에 나오는) 'amendments', 'modifications'은 전부 개정이라는 표현을 쓰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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