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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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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박열'

[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이른바 '괴사진'으로 알려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진(왼쪽). 이준익 감독은 영화 '박열'에서 이를 배우 이제훈과 최희서의 얼굴을 통해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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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암살 시도 박열·가네코의 플라토닉러브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時 통해 운명적 만남
'동지로 함께 살 것' 등 담은 파격적 동거서약서
李감독 "정신적 동지 두 남녀의 정신 담고팠다"
도쿄재판소서 함께 찍은 '괴사진' 통해 확인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박열(1902년~1974년)과 가네코 후미코(1903년~1926년)의 사랑 이야기다. 박열은 1923년 일왕 히로히토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세기 말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이 썼던 테러리즘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려 했으나 폭탄을 입수하기도 전에 붙잡혔다. 가네코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복역하다가 8ㆍ15해방과 함께 빛을 봤다.


그는 조국의 청년들에게 이론적 투쟁보다 진보적 행동주의를 권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민족주체를 바로세우고 통일을 이루고자 했던 행동철학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조국통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에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된 배경은 나오지 않는다. 이 감독은 "박열과 가네코의 플라토닉러브를 그리고 싶었다. 정신적 동지로서 동거서약을 맺은 두 남녀의 온전한 정신을 그대로 담았다"고 했다.

이 사랑은 사진 한 장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테마쓰 가이세이 예심판사의 배려로 도쿄지방재판소 예심 제5호 조사실에서 촬영한 일명 '괴사진'이다. 박열이 건방진 자세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가네코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다. 사진이 퍼지자 정우회, 정우본당 등 야당은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대역죄인들을 감옥에서 특별 대우했다며 와카쓰키 내각을 압박했다. 다테마쓰는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 이 감독은 "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는 연인을 본 적이 없다. 의도가 다분해 보여서 그 배경이 궁금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영화 '박열' 스틸 컷


'우치야마 구도'의 저자 모리나가 에이자부로는 박열과 가네코가 다테마쓰 판사의 우대정책에 회유돼 결정적인 증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박열이 일왕을 폭탄투척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고 진술한 날과 사진을 찍은 날이 일치한다. 이날을 전후해 조사실에서 두 피고를 우대했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천황의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의 저자 김일면도 "다테마쓰 판사는 어떻게 해서든 박열과 가네코를 달래고 치켜 올려서 영웅심리를 조장하는 공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가네코의 평전을 쓴 야마다 쇼지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회유가 아니라 동지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결정적 증언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실제로 박열은 마지막 소원으로 가네코와 함께 찍은 사진을 조선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내 넌지시 결별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근거는 다테마쓰 판사의 이야기에서도 발견된다. "범죄 사실이 대역에 관한 모의였다는 점으로 보아 나는 그 진상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 나라의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건이야말로 드러나지 않게 국가에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뜻을 달성한 다음 이를 나 자신의 기념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영화 '박열' 스틸 컷


사진이 박열의 결정적 증언 전에 찍힌 것이라면 모리나가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반대로 사진촬영이 결정적 증언이 있고 난 다음에 있었다면 박열을 회유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없다. 이 감독은 영화에 야마다의 견해를 충실히 반영한다. 그러면서 박열과 가네코를 육체적 사랑을 뛰어넘은 신념을 나누는 관계로 묘사한다. 이 전개는 초점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 맞춰져 다소 밋밋하게 나타난다. 손을 겨우 한 번 잡을 정도로 두 인물이 교류하는 신도 적다. 이 감독은 "1920년대 아나키스트들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루할 수 있다"고 했다.


가네코는 '청년조선'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들개처럼 생활하면서도 그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굴욕스럽게 여기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에 정열을 쏟은 박열의 모습이 잘 나타난 글이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하늘을 보고 짖는/달을 보고 짖는/보잘 것 없는 나는/개새끼로소이다//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뜨거운 것이 쏟아져/내가 목욕을 할 때/나도 그의 다리에다/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영화 '박열' 스틸 컷


가네코는 자서전에서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의 마음을 강하게 비끄러맸다. 그 시를 다 읽었을 때 정말이지 황홀할 정도였다. 내 가슴의 피는 뛰고 있었다. 어떤 강렬한 감동이 나의 전 생명을 고양하고 있었다"고 했다. 영화에서 그녀는 처음 마주한 박열에게 "우리 동거합시다"라고 한다. 실제로는 고백까지 만남이 두 번 더 있었다. 가네코는 박열에게 "당신은 민족운동가이십니까?"라고 물었다. 박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족운동에 가담하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나의 사상이 있습니다. 일이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도쿄 에바라군의 신발가게 2층 다다미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가네코는 동거를 통해 자아를 발견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근대일본인은 서구의 근대에서만 인간해방의 이념을 구했다. 서구를 정점으로 한 세계지배와 차별구조 속에서 자신들만 '선진 국민'으로 올라서면 그만이었다. 가네코는 식민지 조선인 박열에게서 살아가야할 방향을 찾았다. 야마다는 가네코 평전에서 "근대세계의 지배질서 맨 밑바닥에 놓여 있던 인간의 해방을 향한 길에 자기 해방을 서로 포개는 보편적인 인간해방의 길이었다. 근대일본인을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고 평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박열·가네코...시대를 뛰어 넘은 사랑 영화 '박열' 스틸 컷


이 감독이 둘의 사랑을 플라토닉러브로 본 근거는 동거 서약서이다. 동지로 함께 살 것,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제거할 것, 둘 중 하나가 사상적으로 타락해 권력자와 악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둘 것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약속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거부하는 것이다. 공통된 목표를 향한 평등한 관계의 동지로서 결합하고자 하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약속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여되는 은혜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평등을 추구한 것이다. 이 의지는 가네코가 옥중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인간으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이유에 기초해 '연약한 여성'으로 간주되는 걸 거부한다. 이와 동시에 그런 전제 위에 서 있는 모든 은혜를 단호히 거절한다.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 상대를 노예로 보고 가엾게 여기는 주인, 나는 이 둘 모두를 배척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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