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 가위눌려 식은땀 흘리다 깨어나 밥을 먹는다. 새벽 3시. 배추김치를 쭉 찢어 밥을 먹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새하얗다. 귀신 같다. 귀신처럼 외롭다. 귀신보다 더 외롭다. 어두움을 틈타 창가로 몰려든 나무 그림자들이 낄낄거리며 유령 행세를 한다. 하지만 나는 밥과 함께 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절절 끓는 공기를 무찌르는 데는 밥만 한 장수가 없다. 밥도 그걸 알기에 꿀맛같이 든든한 자신을 귀신보다 더 외로운 내 배 속으로 자꾸만 밀어 넣는다. 희붐히 동쪽 지붕이 밝아 온다. 배 속이 꽉 찼으니 이제 악몽 퇴치는 시간문제다. 창문을 열자 창가에 눈을 갖다 붙이고 나를 염탐하던 나무들이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시침을 뗀다. 나는 씨익 웃으며 씩씩하게 부엌으로 나가 다시 밥을 짓는다. 밥은 삶의 성기다. 그를 품기 위해 새 아침이 빠르게 밝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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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으로 산다'라는 표현이 있다. '밥심'은 '밥을 먹고 나서 생기는 힘'을 뜻하는 단어로 표준어다. 그런데 얼른 드는 궁금증 하나는 '밥을 먹고 나서 생기는 힘'이라면 '밥힘'이라고 적어야 맞지 않을까다. 왜 '밥힘'이 아니라 '밥심'일까? 그 구체적인 이유야 모르겠지만 내 딴엔 아마도 '밥을 먹고 나서 생기는 힘'이란 곧 마음(心)의 힘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밥을 먹고 나면 배도 든든해지고 힘도 생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실하고 굳센 혹은 평온한 마음도 함께 뒤따른다. 물론 밤에 음식을 먹는 건 몸에 좋지 않다고들 해서 대부분 피하는 일이다. 그렇긴 해도 나는 시인처럼 밥의 힘을 믿는 편이다. 그래서 낮이든 밤이든 외롭거나 힘들 때면 일단 눈 딱 감고 밥 한 그릇 뚝딱 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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