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개업체 4년새 절반 줄어
기존 종사자 중간 모집책 활동
해외로 여행 보내주는 척
현지 업체와 짜고 사기행각 빈번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대전에 사는 직장인 서모(50)씨는 국제결혼중개업자 김모씨의 소개로 지난달 베트남 하이퐁까지 가서 맞선을 봤다. 국제결혼중개업체에 다니던 김씨가 홀로 사업을 시작했다며 서씨에게 여행 경비로 200만원을 먼저 지불하면 복잡한 서류절차 없이 몇 명의 여성들을 만나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이 여성이 한국행을 동의했을 때 1300만원을 후불로 내면 된다고 말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하이퐁에 도착한 서씨는 7박8일 동안 관광도 하면서 여성들과 맞선도 봤다. '마담'이라고 불리는 베트남 현지 여성과 함께였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서씨가 마음에 드는 여성을 지목해 김씨에게 전달했다. 김씨는 해당 여성도 한국으로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며 잔금을 치러주고 한국에 돌아가 있으면 나머지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현지에서 먼저 사람을 만나면 복잡한 서류가 필요 없다고도 덧붙였다. 이 말을 믿은 서씨는 통장으로 돈을 보낸 다음 한국으로 돌아가 며칠을 기다렸다.
그 후 서씨는 김씨로부터 딱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서씨는 "맞선 본 베트남 여성이 다른 남자가 중간에 생겼다고 한국행을 거부해서 어쩔 수 없다고 얘기했다"며 "더 이상 김씨와도 연락이 되지 않아 1500만원만 날렸다"고 말했다.
국제결혼중개업체 폐업이 속출하면서 기존 종사자들이 중간 모집책으로 활동하면서 사기행각을 벌임에 따라 서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26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국제결혼중개업체 수는 4월 기준 361개로 2013년 512개에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처럼 국제결혼중개업체들의 폐업이 늘어난 것은 국제결혼을 둘러싼 피해사례가 늘고 사회 문제화 되면서 정부가 관련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2010년 신설된 신상 정보 공개와 인증을 의무화 한 것이 직격탄이 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만남을 할 경우 자신의 신상 정보를 먼저 상대방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대부분 남성들이 이를 꺼린다는 것이다.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3조2에 따라 중개업체를 통해 만남을 할 경우 건강진단서, 범죄경력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사전에 만남 상대에게 제공해야 하고, 공증인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서류 제공을 기피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업체는 폐업을 하고 무등록으로 영업하는 곳이 덩달아 늘어났다.
전대영 국제다문화협회 인권위원장은 "기존 중개업체들이 문을 닫은 다음 무등록으로 영업을 하는 곳들이 많다"며 "여행을 보내주는 것처럼 한 다음 현지 업체들과 짜고 사기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그 많던 회사들이 한 번에 다 사라졌는데 대부분 무슨 일을 하겠느냐"며 "사기를 치는 중간 모집책이 된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엔 중개업체를 통하지 않고 현지 한인 타운을 통해 국제결혼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출입국 행정 업무를 대행해주는 정한우씨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일정 기간 체류하면서 현지 여성들을 만나 결혼하려는 20대 남성들도 있다"면서 "결혼중개업체를 통하면 비용도 들고 서류가 위조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개인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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