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국민연금이 장고끝에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그동안 여론의 십자포화를 받아온 국민연금이 고도의 계산 끝에 '명분과 실리'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17일 오전 1시께 대우조선의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을 비롯한 투자위원들이 전날 밤 늦게 투자위원회를 열고 자정이 넘도록 논의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투자 회사인 대우조선의 재무적 상태와 경영정상화 가능성 등을 살피고 재무적 투자자로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실익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왔다"며 "대우조선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이 만기연장 회사채에 대한 상환 이행 보강 조치를 취함에 따라 그 내용을 감안해 수익성과 안정성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심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 채무조정 수용이 기금의 수익 제고에 보다 유리할 것으로 판단하고 ‘찬성’하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기금운용본부는 앞으로 기금운용원칙에 따라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익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 수용 여부를 사채권자집회가 열리는 당일까지 끌고가 발표한 배경엔 '최순실 게이트'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사건으로 국민연금 이사장이 구속되고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등 국민연금 조직이 위태해지자 추후 문제가 될만한 소지를 최대한 제거하고 가장 여론의 비난을 덜 받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KDB산업은행 측이 제공한 자료가 불충분하고 이를 충분히 검토해볼 시간이 부족하다며 판단을 미뤄왔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2000만 가입자 기금 손실을 최소화 한다는 명분 하에 대주주 측이 더 큰 부담을 떠안는 방향으로 협상을 벌여왔다.
막판 줄다리기 끝에 결국 산은이 한발 양보하면서 국민연금은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과 더불어 '실익'까지 거두게 된 셈이다. 산은은 회사채 상환용 1000억원대 에스크로(별도 관리 계좌) 마련, 회사채 및 기업어음(CP)의 청산가치 수준 담보 제공, 회사채 및 CP 최종 상환기일까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신규자금 지원 기한 유지, 2018년부터 매년 정밀 실사 후 상환능력 확인시 잔여 CP 및 회사채 조기 상환 등의 조건을 제시하며 국민연금의 마음을 돌렸다.
이에 이날과 오는 18일 열리는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 재조정은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 등도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 전체 발행잔액 1조3500억원의 30%에 육박하는 3887억원어치를 보유중이다. 특히 오는 21일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4400억원 중 국민연금의 보유액은 2000억원(45.45%)에 달한다.
대우조선 회사채와 CP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를 연장하는 채무재조정이 이뤄지면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에 신규 자금 2조9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다만 추후 손실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있다. 대우조선의 주가 하락으로 인한 피해와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대우조선이 회생에 실패하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국내 연기금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나름 합리적인 판단을 했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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