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특파원단 간담회
"대미 투자 지속시 원화 약세 고착화 전망"
中企 역동성 회복·지역 균형 발전 등 구조 개혁 제언
모리스 옵스펠드 미국 UC버클리대 명예교수는 지난 10월 말 최종 타결된 한미 무역 협상 결과를 두고 한국이 미국에 바친 '조공(tribute)'에 가깝다고 9일(현지시간) 평가했다. 그는 최근 원화 약세의 주요 원인으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지목하며, 향후 3500억달러(약 51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가 단계적으로 실행될 경우 한국의 원화 약세가 구조적으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옵스펠드 교수는 이날 뉴욕 맨해튼 코리아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새로운 관세 시대의 한미 경제 관계" 포럼에서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조선 분야에 대한 일부 약속은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부분은 사실상 미국에 바치는 순수한 조공"이라고 진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옵스펠드 교수는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을 맡아 '오바마 멘토'로 통한다. 지금은 UC버클리대 교수와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선임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향후 10년 동안 미국에 총 3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비관세장벽 완화, 환율 인위적 조작 배제 등을 약속했지만 정작 한국이 원했던 양자 간 통화 스와프 체결은 얻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대규모 대미 투자가 지속될 경우 원화 약세가 단기 현상을 넘어 구조적 흐름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약 294조원)가 현금 투자 형태란 점에서,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자본 유출이 원화 가치에 하방 압력을 가할 것으로 우려해 왔다.
옵스펠드 교수는 이어진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현재 원화 가치는 (지난해) 계엄령 당시 수준까지 하락하는 등 역사적 약세 국면에 근접해 있다"며 "최근의 원화 약세는 주로 통상 환경 변화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국가가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원화는 이론적으로 약세가 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며 "한국이 미국에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투자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자본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해 원화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미 투자 흐름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원화 약세는 구조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며 "높은 관세 역시 (원화의) 또 다른 구조적 약세 요인"이라고 예상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의 관세 인상 등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 중 하나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다자간 경제협력체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있다고 제언했다.
또한 한국 경제의 구조 개혁 필요성도 언급했다. 특히 중소기업 부문의 낮은 역동성, 경제 전반에 걸친 독점력, 심화되는 불평등을 지적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중소기업 부문은 매우 중요하지만 사업 역동성이 지나치게 낮고 경제 전반에 걸쳐 독점력이 너무 크다"며 "중소기업 부문이 더욱 역동적이 된다면 청년 실업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제 활동이 서울에 지나치게 집중돼 주택 가격 상승과 사회적 긴장을 초래한다"며 "지역 기반 정책이 한국 경제에 매우 유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경제와 관련해서는 급증하는 재정적자를 주요 문제로 꼽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정책 개입 시도가 물가와 금리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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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스펠드 교수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미 연방준비제도(Fed)를 사실상 장악한다면 우리는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정부 부채 이자를 낮추려는 더 많은 노력을 보게 될 것"이라며 "이는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전망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은 단기적으로 부채를 줄이지만,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금리가 더 오르고 비용만 남게 된다"고 경고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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