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전격 구속되면서 가뜩이나 대내외 악재 속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온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기업경기심리는 더욱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한국경제는 수출과 내수 부진 속에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안보위기 고조 등 크나큰 대내외 악재에 가로막혀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한 기업인의 구속과 기업 이미지 훼손에 그치지 않고, 전체 기업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확대하고 기업가정신을 크게 후퇴시킬 수 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재계 관계자들은 정치권과 특검의 무리한 먼지털기식 수사는 앞으로 대기업을 대상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칠레보다 못한 기업가정신…이재용 구속에 위축우려
기업가정신은 이미 많이 위축된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 최근 세계 기업가 정신 발전기구가 발표한 2017 글로벌기업가정신지수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기업가정신 순위는 조사 대상 137개국 중 27위에 불과했다. 작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경제규모(GDP)는 1조444억원으로 세계 11위를 기록한 데 반해 기업가정신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칠레(18위), 에스토니아(23위), 슬로베니아(26위) 등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국가의 기업가정신지수 순위가 더 높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기준으로도 중하위권인 23위에 그쳤다. 우리나라 순위는 2015년 28위 2016년 27위로 최근 몇 년간 정체됐다. 일본은 2015년 33위, 2016년 30위로 한국보다 낮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5위로 한국을 두 단계 앞섰다. 기업가정신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는 미국(1위)이었고 스위스(2위), 캐나다(3위), 스웨덴(4위), 덴마크(5위) 등이 뒤를 이었다.
-불확실성 커진다…추락한 기업경기심리 더 내려가나
경기 불확실성이 더 커지면서 기업경기심리는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한 결과, 2월 전망치는 87.7로 12개월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망치가 기준선 100을 회복하지 못하고 한참 밑돈 수준에서 계속 악화되는 양상이다. 전망치뿐만 아니라 1월 기업 실적치(89.2)도 100을 하회했다. 이는 2015년 4월(101.3) 이후 21개월 연속 부진한 기록으로, 기업의 성장성 하락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실제 기업 매출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큰 변동폭('08년 23.2% → '09년 2.0% → '10년 19.0%)을 보였다가 점차 성장세가 하락해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 결정으로 향후 경기 여건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9,10일 경총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재벌때리기가 위험수준에 다다랐다고 경고한 바 있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강연에서 "요새 재벌은 아무리 때려도 사는 줄 알고 여기저기서 때리는데 그렇게 때리면 죽는다"며 "공정한 경쟁질서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 경쟁력을 꺾으면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재벌은 무작정 때리기만 해선 안된다"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은 "자유주의 바탕 위에 시장경제를 만들어 놓았는데 다시 사회주의 경제로 만들려고 도처에서 논의 중"이라며 "한마디로 정부가 다하겠다는 것인데 정부가 다해서 잘 된 나라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시장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서 "반시장적 법률, 기업을 괴롭히는 법률, 전 국민을 가난하게 만드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이 경제 독재인가. 경제민주화는 일그러진 화두"라면서 "대선 때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고질적인 문제인지, 방향이 잘못 잡혔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의 상당수 수단이 미국 주주 민주주의에 가까운데 미국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1% 대 99%라는 심각한 양극화를 가져온 원인"이라며 "1997년에 기업 구조조정을 하면서 30대 재벌 중 17개를 없앴는데 개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나머지 기업이 과연 개혁의 대상이냐"고 반문했다.
신 교수는 재벌 정책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신 교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정책을 펴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를 사전 규제하며 경영승계가 어렵다"면서 "30년 동안 재벌 원죄론으로 때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오히려 미국처럼 양극화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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