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송윤정 인턴기자]'서프라이즈'에서 신여성 나혜석의 안타까운 생애가 소개됐다.
5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타지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시인 겸 화가 나혜석의 일생을 다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나혜석은 선생님이 돼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하지만 부친이 정략 결혼을 요구하자 돌연 화가가 될 것이라며 결혼을 거부했다.
나혜석의 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으면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고 나혜석은 스스로 집을 나왔다.
이후 나혜석은 소설 '경희'를 썼다. 책에서 나혜석은 "아버지가 시집가면 좋은 옷에 생전 배불리 먹다 죽지 않겠니? 하실 때에 경희는 그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평생 처음으로 벌벌 떨며 대답했다. 남편이 벌어다 준 밥을 그대로 얻어먹고 있는 것은 우리집 개나 다를 바 없지요!"라고 적고 있다.
그러던 중 나혜석은 자신을 6년 간 쫓아다닌 한 변호사와 결혼을 결심한다. 이때 나혜석은 "그림 활동을 방해마라, 어머니를 모시지 않겠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해도 평생 나만 사랑해라"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결혼 후 첫 개인전을 연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가 되며 엄청난 성공을 누린다. 출산 뒤 파리 유학을 떠난 나혜석은 프랑스의 자유사상에 흠뻑 빠진다.
그곳에서 나혜석은 최린이라는 남성과 사랑에 빠졌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분노한다. 하지만 나혜석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날 사랑해 달라고 하지 않았냐"며 오히려 남편을 탓한다.
이에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자 나혜석은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같은 남성들이었다면 호탕한 사람들로 여겨졌을 거다"라며 1934년 이혼 고백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혼고백서 발표 이후 나혜석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렸다. 자신은 당당했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나혜석을 외면했다.
결국 나혜석의 그림 역시 외면 받으며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혜석은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로 떠날 결심을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파리행을 접는다.
이후 양로원을 전전한 나혜석은 아이들이 보고 싶어 양로원을 탈출하지만 전 남편의 반대로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또 다시 아이들을 보기 위해 양로원을 탈출한 나혜석은 결국 1948년 12월, 차가운 길거리 한복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불꽃같은 삶을 살던 신여성 나혜석의 마지막 모습은 영양실조와 실어증에 걸린 행려병자였다.
송윤정 인턴기자 singa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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