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중하차한 반기문의 비밀 - 개인·가족 상처 심하고 쌓은 명예마저 잃어, 정치교체의 길 결국 포기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1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과 20일 전인 지난달 12일 귀국하며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고 했던 반 전 총장이었다. 그 각오는 어쩌다 꺾이게 됐을까. 반 전 총장은 불출마를 선언하며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정치교체를 주장한 20일 전 귀국연설에도 포함돼 있었다.
반 전 총장은 1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12일 반 전 총장이 귀국해서 한 첫 연설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당시 반 전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귀국 즈음해서 여러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고 또 방송이나 신문에 보도가 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진실과는 전혀 관계없다. 그동안 경험과 식견을 정치 참여를 통해서 조국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순수하고 참된 소박한 뜻을 왜곡·폄훼하는 내용들이다."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이유로 밝힌 정치권에 대한 불만도 역시 20일 전과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다. 반 전 총장은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이 역시 귀국연설에서 말 한 것인데 당시에는 "지극히 편파적인 이익을 앞세워서 일부 인사들이 보여준 태도, 유엔과 제 가슴에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헌신하고자 하는 저의 진정성, 명예 또 유엔의 이상까지 짓밟는 이런 행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반 전 총장이 불출마 이유로 얘기한 음해, 유엔 명예 실추, 일부 정치인들의 이기주의적 태도 등은 한 몸 불사르겠다고 했던 20일 전에도 그의 발목을 잡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새로울 것 없는 이유를 들어 갑자기 뜻을 접겠다고 했을까.
세간에서는 좀처럼 떨어진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이 가장 큰 이유일 것으로 보고 있다. '최순실 사태' 전까지만 해도 1위를 달린 그의 지지율은 귀국 3주일이 지나면서 10%대에 머물고 있다. 1일 발표된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13.1%에 불과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불출마를 선언하고 언제 결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오전"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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