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미디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은 아마 'OO년'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 해의 십이 간지를 일컫는 말인데, 솔직히 나는 이것을 전부 외우지 못한다.
지난해는 '병신년'이었다. '갑을병'에서 병, '자축인묘진사오미신'에서의 신이 붙어 만들어진 2016년의 간지이다. 분명 수천 년 역사 속에 내려온 조어법으로 만들어졌지만, 언뜻 욕설같이 들려 부르기도, 듣기도 민망했다.
지난해 두 명의 여성이 이 나라에서 분탕질을 쳐온 사실이 드러난 후, 나도 모르게 이런 비슷한 욕지기가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기는 했다. 해가 바뀌었지만 올해도 여전히 난세다. 심지어 올해 닭의 해 '정유년'인데, 연초부터 닭들이 난리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다.
닭들은 하루에 수만 마리가 죽어나가는데, 각종 광고에서 환하게 웃는 닭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조리 비극의 정수'라 할 수 있겠다. 신년 초부터 들려오는 이런 소식들이 가뜩이나 침울한 분위기를 더 어둡게 만든다.
역사 속의 어느 계유년, 난세인 적이 있었다. 왕위 계승 자격이 없는 왕자가 무리 100여명을 데리고 이 나라를 삼켰는데, 그게 바로 계유정난이었다. 그에 앞서 태종도 그랬고, 그 후에 중종반정이나 인조반정도 결국 왕위를 찬탈한 역모였다. 그러나 유독 계유정난으로 왕위에 오른 세조(수양대군)는 욕을 많이 먹는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였다는 원죄 때문이다.
수양은 세종의 아들이었다. 똑똑하고 강한 사내였지만, 왕위 계승자격이 없었다. 형인 문종은 사시사철 골골했고, 나라는 김종서와 황보인이라는 막강한 두 신료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왕자 수양이 난을 일으킨 건 선대가 이룬 건업의 주도권을 다시 왕실로 되찾아 오기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조가 피를 묻혀가며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만든 덕에 한동안 조선이 태평성대를 이뤘지만, 어쨌든 그해 계유년에 있었던 일을 역사는 '난'으로 평가했다.
계유정난 같은 정변과 비슷하지만 못된 군주를 신하들이 끌어내릴 경우 이는 역사에 '반정'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된다. 연산을 폐위시킨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이 그렇게 불린다. 이는 분명 역모이되, 정당성과 명분을 받았기에 그것을 정당한 정치적 혁명행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라는 게 결국 승자의 논리를 반영한 사관의 붓놀림에 달린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면 그 또한 맞는 얘기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민의까지도 역사가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역모와 반정의 차이는 그 시대 대중들의 공감을 얼마나 얻었느냐에 따라 차이가 갈릴 수밖에 없다.
흔히 세월의 수레바퀴라고 한다. 수백 년이 흘러 오늘날에도 반정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부정한 정권을 향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 요구를 하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는 급물살을 타고 있고, 특검의 칼날이 곳곳에서 춤을 춘다. 다만 이번에는 권력자들의 싸움이 아닌 국민들이 일으킨 반정이다.
반정으로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왕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사라졌다. 재판도 없던 시절, 분노와 복수를 불태우는 정적들의 손아귀에 떨어진 폐주의 최후가 어찌 좋을 수 있겠는가. 정유년 첫 주가 지나고 있다. 반정(反正 )은 잘못되고 비뚤어진 상태를 바르게 만든다는 의미다. 위정자들은 이 말을 되새겨 하루라도 빨리 이 나라를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훗날 역사책이 지금의 정유년을 '난'이라고 기록한다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이초희 유통부장 cho77lov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