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발사체 2018년 10월로 발사 연기…무엇이 문제였나?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우주의 기운이 헐클어질대로 헝클어졌다."
박근혜정권의 우주개발 계획에 브레이크가 채워졌습니다. 박근혜정권은 원래 2018년에 예정됐던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를 2017년으로 1년 정도 앞당긴 바 있습니다. 발사체 기술의 진행상황과 관계없이 박근혜정권은 '2017년 12월 시험발사'를 공언했습니다. 주무부처인 미래부는 이 하달 받은 '명령'에 따라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습니다. 박근혜정권은 달 탐사도 2025년에서 이를 5년이나 앞당겼습니다. 과학이 정치에 휘둘리는 매우 불쾌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이 같은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미래부는 지난 22일 국가우주위원회(위원장 최양희 미래부 장관)를 열고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를 2018년 10월로 연기한다고 심의·의결했습니다.
◆예견됐던 시험발사 연기=이번 계획이 틀어진 시기는 올해 상반기였습니다. 한국형발사체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현재 기술진행 속도와 기술적 오류 등으로 판단했을 때 2017년 시험발사는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미래부에 전달했습니다. 미래부는 국가우주위원회에 관련 안건을 올리기 전에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위원장 홍남기 미래부 1차관)'를 열어 이를 논의했습니다. 논의 결과 '추가로 조사해 판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형발사체 관련 실무 기술을 맡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미래부는 한국연구재단 소속 민간위원 11명으로 '한국형발사체점검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점검'을 위한 '점검위원회'를 또 다시 만드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점검을 위한 점검이 아니라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인지 외부 위원들을 통해 분명히 하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국형발사체점검위원회'의 활동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8월쯤에 한국형발사체점검위원회의 분석 결과가 나오고 이를 국가우주위원회에 올려 '발사를 예정대로 할 것인지' '기술적 진행상황으로 봤을 때 연기해야 할 것인지'를 심의·의결해야 했습니다. 실제 국가우주위원회는 7월에 열리기로 했다가 추가 검토를 위해 연기됐고 9월에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이 또한 예정대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을 허비한 미래부는 지난 22일에 국가우주위원회를 열고 2018년 10월로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를 연기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연기배경① 연소 불안정=우여곡절 끝에 연기됐는데 그 이유는 기술적 부분에 있었습니다. 첫 번째 원인으로 75톤급 연소기의 연소불안정이 꼽혔습니다. 연소기는 액체 추진제(연료, 산화제)를 연소시켜 발생되는 고온, 고압의 가스를 노즐을 통해 분사해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말합니다.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로켓이 정상적 연소를 통해 지구 중력을 극복하고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는 시스템입니다. 이 연소기에서 불안정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연소 불안정이란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이나 추진제 공급계통의 교란, 음향장 등이 연소실 내의 압력, 온도, 유속 등에 영향을 가해 불안정한 연소 상태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연소 불안정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진동이 많이 발생하면서 로켓엔진이 폭발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이 같은 문제는 올해 2월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지난 9월 연소 안정성이 확인된 설계를 적용한 엔진(시제2호기)을 조립 완료했습니다. 11월에 정상적 연소시험을 수행했고 연소시간 145초를 달성했습니다. 연소 불안정이란 복병을 만났고 원래 계획했던 시간이 9.5개월 정도 지연됐습니다.
◆연기배경② 추진제탱크 불량=추진제탱크 불량도 시험발사 연기의 원인이었습니다. 추진제탱크는 산화제탱크와 연료탱크로 구성됩니다. 발사체 엔진의 작동을 위해 산화제와 연료를 공급해주는 발사체의 주요 구성품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7월 추진제탱크 용접과 제작용 설비 설치 이후 같은 해 8월 추진제탱크 제작을 시도했는데 불량이 발생했습니다. 올해 3월 용접, 설비 업체의 외국 엔지니어와 공동작업 수행 등을 통해 문제점이 대부분 해결됐습니다. 추진제탱크 제작공정 문제로 원래 계획과 비교했을 때 약 11개월 지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기배경③ 정치에 헝클어진 우주개발=미래부는 22일 국가우주위원회를 개최하고 문제가 된 여러 가지 상황을 살펴본 결과 한국형발사체의 시험 발사 일정을 기존의 2017년 12월에서 2018년 10월로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우주개발에서 로켓 시험발사 연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발사 몇 시간 전에도 연기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번 한국형발사체 사업도 박근혜정권이 들어서면서 뒤죽박죽돼 버렸습니다. 이는 기술적 진보와 현재의 개발단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비롯된 문제입니다. 정권애서 "이때 발사해!"라고 결정해 버린 뒤 실무 기술진들은 이 일정에 맞춰 발에 땀이 나도록 달려야 하는 '비정상적 시스템'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우주개발에 있어 로켓 개발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로켓을 언제 쏘아 올리느냐가 우선되면 안 됩니다. 어떻게 성공적으로 쏘아 올릴 것인 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실무 기술진의 개발 일정에 따라야 합니다. 실무 기술진의 판단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이에 따라 발사 날짜를 조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달 탐사는 그대로?=미래부는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를 약 10개월 정도 연기하면서 달 탐사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2020년에 시작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을 통해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첫 번째 달 탐사에서 시험궤도선을 달까지 보내는 데 한국형발사체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해외의 다른 발사체를 이용합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어떤 발사체를 이용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또 나사와 협력을 맺었다고는 하는데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이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달 탐사에서는 한국형발사체를 이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본다면 2020년 달 탐사 프로젝트도 연기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배태민 미래부 거대공공연구정책관은 이에 대해 "미국에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 정책 등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나사와 협력을 맺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수 등을 충분히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기술진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을 때이다."
조광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한국형발사체 시험발사 연기를 두고 이렇게 운을 뗐다. 조 원장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이 되면 시간문제일 뿐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은 경우 기술진들의 고민을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형발사체 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닥쳤는데 현재 중요한 문제들을 다행히 해결됐다고 강조했다.
조 원장은 "2018년 10월에 75톤 엔진 1개를 시험 발사하게 된다며 "이어 2019년에 75톤 엔진 4개를 묶은 1단, 75톤 엔진 1개의 2단, 7톤 엔진 1개의 3단을 묶은 본격 시험발사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2018년 10월과 2019년 두 번의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2020년 탑재체(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위성)를 상단에 싣고 한국형발사체는 우주로 날아가게 된다. 조 원장은 "75톤 엔진의 연소 불안정 문제는 그동안 기술진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지금은 해결됐다"고 밝혔다.
연소 불안정 문제가 불거진 곳은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우주센터였다. 나로우주센터에 75톤 엔진 시험설비가 만들어지기 전에 엔진 연소 실험은 대전 항우연에 있는 30톤 엔진 연소시험 설비에서 테스트가 이뤄졌다. 이때는 문제가 없었다. 나로우주센터에서 75톤 엔진 연소시험 설비에서 연소 시험을 진행했을 때 연소불안정 문제가 발생했다.
조 원장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했고 지금은 문제가 해결된 상태"라며 "더 이상 똑같은 문제로 일정이 연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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