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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영의 晴耕雨讀]정유라 위해 들러리된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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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경쟁과 정신적 빈곤

세상은 풍족한데 도대체 그속의 삶은 왜 이러할 수밖에 없는가 높은 지위에 오른 소수가 사회의 온갖 이득을 독식하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임철영의 晴耕雨讀]정유라 위해 들러리된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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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과 그의 딸 정유라, '왕실장'이라고 불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직무유기 혐의를 받고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그리고 수많은 부역자들.


이들은 최고 권력의 지위를 이용해 민주공화국의 국정을 좌지우지했고 많은 것을 사실상 독점했다. 여기에 국내총생산(GDP)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대기업도 비중 있는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했다. 아이러니는 얼마 전만해도 그들의 강한 권력과 높은 지위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매기는 데 매우 익숙했던 일상을 복기하며 아찔함을 느낀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성공을 향한 어쩔 수 없는 경쟁의 속성이라며 애써 두둔했던 일련의 과정이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목도하고 있는 김기춘, 최순실, 정유라, 우병우라는 괴물은 남보다 더 많은 돈, 남보다 높은 연봉, 남보다 더 좋은 학벌, 남보다 더 나은 직장, 남보다 더 나은 배우자 그리고 남보다 더 강한 권력에 대한 극단적 욕망의 전형으로 사회시스템마저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 논쟁적 저서를 여러 권 써낸 한 작가는 지금의 세대를 일컬어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온 음식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먹는 세대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세대"라고 진단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극소수가 장악하고 있는 경쟁의 헤게모니(hegemony)가 지금보다 '객관적'으로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과 남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으로 전이된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같은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일축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71주년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단편적이고 교조적인 최고 권력자의 방해 작업(?)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불행의 근원을 찾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접근방식은 무거운 주제를 품은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서적에서부터 온라인 논객들의 입담을 담은 대중서적에 이르기까지 다양지만 왜곡된 사회시스템에 희생된 가치를 발견하고, '비교우위' '혁신' 등을 앞세운 편의적 통념을 통렬하게 비판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한 촛불시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무렵 '지위경쟁사회'라는 제목에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불행해지는가' 부제가 붙은 책을 집어 들었다. '왜 우리는 불행해지는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1%를 위한 나쁜 경제학' '왜 분노해야하는가' '승자독식사회' 등의 책처럼 사회시스템을 진단하고 비판과 대안을 담았다.


도시경제를 연구하다가 사회경제 시스템으로 눈을 돌린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쓴 책'지위경쟁사회'의 매력은 다소 지루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문제의식에 진정성이 깊이 배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터에서, 학교에서, 시장에서 그 풍요로움 뒤의 어두운 그림자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고통스런 경쟁의 지옥'을 목도하게 된다. 세상은 풍족한데 도대체 그 속의 삶은 왜 이러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교육사회학에서 사용하는 '지위경쟁'이라는 개념을 빌려와 다양한 영역을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학력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더 높은 학력을 두고 경쟁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지위경쟁에 상대평가와 차등 보상시스템을 결합해 해석의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저자는 한 초등학생의 시를 통해 지위경쟁의 '웃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제목이 '여덟살의 꿈'인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나는 부전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그냥 웃고 넘기자니 깊이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함께 소름이 돋는 시다.


저자는 지위경쟁 개념을 양극화, 과도한 노동시간, 취업전쟁, 과소비, 학벌, 결혼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한다. 연봉 100억원, 1억원, 7000만원, 3000만원짜리 구분법을 포함해 대학 서열, 차별화된 소비, 더 나은 배우자를 통한 지위경쟁의 면면을 훑는다. 아울러 이를 소득 양극화 심화, 노동시간 증가, 경쟁적 과소비 등의 원인으로 꼽는다. 저자의 분석은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시스템은 '잘나가는 자'와 '못나가는 자'를 통해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살아남는다"는 분석에 지지를 받는다.


지나친 지위경쟁은 사회적 낭비라고 꼬집는다. 과도한 노동시간과 취업난에 대해서는 고용 불안으로 젊은이들은 노력을 낭비하고 있고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강도를 더하는 젊은이들의 헛수고가 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주장이다. 결혼시장에서도 동질혼 또는 여성의 상향혼이 강해지면서 저소득 저학력 계층의 혼인율이 급격하게 추락하는 비극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절대 다수가 들러리로 전락하는 지위경쟁 시스템에서 행위는 극단으로 진행되기 십상이라고 경고한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서열의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낮은 지위의 학생으로 전락한다. 전국 수험생의 2%만 입학할 수 있는 SKY라는 한정적 지위는 서열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더욱 큰 힘을 얻고, 나머지 98%는 낭비적 열등감으로 마음이 작아져만 가고 있다.(중략) 높은 지위에 오른 소수가 사회의 온갖 이득을 독식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과도한 지위경쟁으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며 지속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촉구한다. "(지위를 둘러싼) 격차가 더욱 확대된다면 승자에 대한 부러움이 서서히 분노와 증오로 바뀌어갈 것이다. 상대평가와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지위경쟁 시스템이 위험 신호를 울리고 난 다음에는 어떠한 처방도 먹히지 않는 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책은 각종 데이터와 경제학ㆍ사회학 이론을 활용해 지위경쟁의 충격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다만 시스템의 문제와 인간 심리의 문제 등이 혼재해 논리의 흐름을 몇 번씩 더듬어 봐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현상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공감이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협력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은 다소 비약적이다. 지위경쟁의 극단을 우려하는 건지, 전반적인 사회시스템의 전복이 필요하다는 건지 혼란도 있다.


헬조선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촛불이 타올랐다. 특검과 국회 청문회가 이어지고 있고 부역자들을 색출하기 위한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야기하던 대통령이 정상화 대상이 됐다. 어떤 처방도 먹히지 않을 만큼 늦은 게 아니길.


[임철영의 晴耕雨讀]정유라 위해 들러리된 99% 지위경쟁사회/마강래 지음/개마고원/1만4000원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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