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청문회? 기업 청문회로 변질…"평소 회장님께 부탁하고 싶었다" 민원성 발언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지난 6일 오후 11시 국회 본청 245호. 이날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이나 증인으로 나선 재계 총수들이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 10시 시작된 청문회는 13시간이나 이어졌다. 체력이 강한 사람도 버티기 힘든 시간이다. 이날 청문회는 TV생중계를 통해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 전달됐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발언 내용은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공유됐다.
질의에 나선 의원들이나 대답하는 총수들이나 표정 하나, 발언 하나 조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한국 경제를 이끄는 9개 그룹 총수들이 총출동한 이날 청문회는 여러 면에서 28년 전인 1988년 5공 청문회를 연상하게 했다.
당시에는 SNS와 인터넷이 활성화됐던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파력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5공 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몰입도는 이번 청문회 못지않았다.
재계 총수들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부름에 응답한 점은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국회가 증인으로 채택한 9명 전원이 참석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파헤치기 위해서는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출석이 필요했지만, 핵심증인들인 이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 우 전 수석은 아예 출석요구서 수령을 피하는 방법으로 불출석 출구를 마련했다.
재계 총수들이 전원 출석한 점은 이들의 청문회 기피 상황과 맞물려 평가할 일이다. 다만 이번 청문회는 여러 측면에서 개선점을 남겼다. 국회는 9개 그룹 총수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지만, 질의응답 내용만 놓고 보면 왜 불렀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편중된 결과를 보였다.
이름은 '최순실 청문회'로 붙였지만, 실상은 '기업 청문회'였다. 더 정확하게는 '이재용 청문회'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질문이 집중됐고, 다른 총수들은 의원들과 이재용 부회장의 대화를 청취하는 수준이었다. 9개 총수 중 이재용 부회장을 제외하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도가 10분 정도를 발언했을 뿐 다른 총수들은 여러 질문에 대한 발언시간을 모두 합쳐도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13시간 대기로 이어진 청문회에서 증인의 발언시간이 5분이 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청문회 대부분은 의원들의 일방적인 질의로 이어졌고, 답변자에게는 충분한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일부 재계 총수들은 꼭 증인으로 불러야 했는지 되물음이 필요한 대목이다.
증인들을 상대로 한 윽박지르기, 막말 논란도 재연됐다. 일부 의원들은 최순실 청문회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저출산' 대책에 대해 질의를 하거나 "평소 회장님께 부탁하고 싶었다"면서 지역구 민원성 질의를 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남은 특검조사도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청문회에서 본질과 무관한 질문을 하거나 망신주기식 질문을 하는 것은 개선돼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