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조건부 퇴진선언으로 탄핵소추에 급제동이 걸리는 등 정국이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득실계산에 분주한 정치권이 선택지를 두고 머뭇거리고 있는 만큼, 주말 개최예정인 6차 촛불집회와 여론의 향배가 정국의 방향타 역할을 할 공산이 커 보인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조건부 퇴진선언 이후 '탄핵안 표결'로 기울었던 정국에는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 양상이다. 당장 야권 내에서는 문재인·안철수 두 전직대표를 중심으로 강경론이 득세하는 형국이지만, 일부 개헌파를 중심으로 거국중립내각론 역시 재부상 하고 있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고문은 전날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제안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라며 "탄핵은 예정대로 추진하되 탄핵 이전에 거국내각이 구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의 캐스팅보터인 새누리당 비박(非朴)계 역시 흔들리고 있다. 비박계는 야권이 내달 2일 탄핵을 추진하더라도 공조하겠다던 당초 입장과 달리, 박 대통령이 개헌 등 다목적카드를 염두에 둔 조건부 퇴진론을 던지면서 현재는 여야 협상을 지켜본 뒤 내달 9일 표결에 부치자는 '조건부 탄핵론'으로 선회했다.
이처럼 정치권이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균열상을 보이면서, 주말 열릴 대규모 촛불집회와 여론의 향배가 정치권을 견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최순실게이트'가 수면위로 부상한 이래 촛불집회는 중요한 고비마다 정국 방향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난 5일 20만명이 참가한 2차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2선 후퇴론'을 낳았고, 각각 100만명·190만명이 집결한 3차·5차 촛불집회는 대통령 퇴진·탄핵 요구에 불을 붙였다.
여론조사로 대표되는 여론동향 역시 새누리당 비박계의 행보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수주째 5%를 밑돌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국민의당에 추월당해 3위로 굴러떨어지는 등 여론이 보수정치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놔서다.
현재로서는 박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여론에는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말을 앞두고 발표될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조건부 퇴진론에 대한 호의적 여론이 표출되거나, 주말 촛불집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치권의 균열은 더욱 가속화 될 수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박계 한 분과 통화했는데, 대통령 담화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라며 "3일 토요일 광장에 얼마나 시민들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야권은 현재까지의 촛불·여론동향을 무기로 비박계를 압박하고 있다. 탄핵안 처리에 협조를 호소하면서도, 민심(民心)을 거스를 경우 비박계도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탄핵의 주도권은 싫든 좋든 (새누리당) 비박이 가지고 있다"며 "우리 국민은 비박계의 정의로운 용기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만약 탄핵에 동참하지 않으면 촛불은 비박계를 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