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 화려한 정치가문의 엘리트, 수십억달러의 비자금. 상반돼 보이는 두 가지는 모두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를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지난 2009년 제5대 말레이시아 총리에 취임한 나집 총리는 뼈대 있는 정치 가문의 엘리트로, 총리 취임 시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제2대 말레이시아 총리를 역임한 압둘 라작 후세인의 장남이면서, 제3대 총리인 후세인 온의 조카다. 정치 입문은 1976년 22세에 지역구인 파항의 퍼칸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내리 7선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순탄한 정치인생길을 걸었다. 2004년 부총리에 오른 후 2008년부터 차기 총리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나집 총리에 대한 말레이시아 국민들의 기대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지난 2009년 국내외 자본을 유치해 경제개발을 꾀한다는 명목으로 나집 총리가 설립한 국영펀드 1MBD(1 Malaysia Development Berhad)의 자금 수십 억달러를 유용한 혐의로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사법당국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빼돌린 자금만 최소 35억달러로 추정된다. 횡령한 자금은 부동산과 미술품 등을 사들이는 등 나집 총리와 측근들이 호화생활을 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금 횡령과 맞물려 로스마 만소르 여사의 사치 소비 성향도 구설수에 올랐다. 1억원 남짓인 총리 연봉 외에 뚜렷한 소득이 없으면서도 로스마 여사는 2008년부터 2015년 사이 600만달러가 넘는 보석류와 명품을 구매했다. 특히 다이아몬드와 에르메스 버킨 백을 수집하는 취미 때문에 수차례에 걸쳐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집 총리는 자금 횡령과 관련된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지지층도 생각보다 견고하다. 지난 5월 치러진 말레이시아 주의회 선거에서 나집 총리가 이끄는 연립 여당 국민전선(BN)이 82석 중 72석을 차지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비자금 스캔들에도 견고한 입지에 그의 행보에는 여유로움마저 묻어난다. 1일부터 중국을 방문 중인 나집 총리는 '대국은 소국의 내정에 참견해서는 안 된다"며 비자금 수사의 날카로운 칼을 들이댄 미국 등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