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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윗돌에라도 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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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년 만에 회고록 펴낸 시조시인 한춘섭 선생

[아시아경제 박희준 편집위원]"정통성과 민족성이 담긴 문학 장르인 시조문학의 계승·발전을 위해 애썼다고 자부합니다"


"바윗돌에라도 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시조시인 한춘섭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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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등단 50년 만에 자기의 발자취를 엮은 회고록 ‘꽃은 첫 새벽에 피어나더라’(컬처플러스) 를 펴낸 교육자, 향토사학자이며 시조시인인 한춘섭 선생(75)은 26일 아시아경제인터뷰에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바윗돌에라도 비문을 새겨 두고 싶었다"며 이같이 회고했다. 회고록에는 일찍 여읜 부친에 대한 그림을 실은 '꽃사태' 등 시 20편, 연보, 각종 사진자료 등이 실렸다. 특히 꽃사태는 2009년 6월 월간문학 제484호와 시조문학 100인 단시조 선총 등에 실린 시로서 그의 시의 백미 중의 백미로 꼽힌다.


차라리
동백꽃은
눈물 뚝-뚝-
울기나 한다지

바람결이
흩고 간
어이없는
봄 꽃사태
세 살 적
숙부 잔칫날에
내 아버지
부음(訃音)처럼


한 시인은 1966년 문단에 입문해 애국을 주제로 한 시조 등 시조 350여수, 논문 200편, 저서 16권 등을 썼다. 그는 교사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헌신했고 성남문화원장으로서 지역 사학 발전에도 몸을 받쳤다. 그는 "우리 시조문학의 계승·발전시키고 그 위상을 높이려고 나름 노력했다"면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과 삶을 개척했다"고 자평했다.


그의 평생에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는 인문학도의 굳건한 의지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한 시인은 1941년 10월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강제징용 당해 군수공장과 규슈탄광에서 광부로 일하다 귀국한 부친은 해방을 앞둔 해 그가 세살 때 세상을 떠났다. 홀어머니와 아내, 세 동생과 두 아들을 남겨놓고 요절했을 당시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남은 사람들의 삶은 궁핍했다. 주린 배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6.25가 터지면서 삶은 더 고단해졌다. 피란살이를 하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둘째 삼촌은 인민군에 잡혀가 총살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국군과 연합군의 서울 탈환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동네 앞 미군 헬리콥터 임시비행장에 복무하던 미군 장교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그것이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될 줄은 그는 몰랐다. 빈농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향학열은 꺼지지 않았다, 도시락도 없이 왕복 60리를 걸어 중학교를 졸업했다. 집안이 어려워 졸업 후 3년간 땔나무꾼으로 일하다가 19살에 양평농고에 편입했다. 부족한 용돈은 버스 정류소 앞에서 참외 등을 팔아 벌었다.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야간대학에 들어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서울 서대문구의 카센터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주경야독 끝에 1961년 야간대학인 국제대학 국문학과에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영어를 잘한 덕분에 그는 같은 해 4월 주한미국 대사관에 사무보조원으로 일하게 됐다.


미국대사관에서 일할 때 자료정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수첩에 깨알같이 자료를 정리하고 다시 그것을 100여쪽 분량으로 정리해 바인더에 묶는 습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조시인 이태극 교수를 만나면서 극작공부를 하려던 그는 시조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63년에는 서울시내 5개 대학 국문학과 전공 대학생들 시조문학 동인단체 ‘울림회’를 국내에서 처음 발족,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듬해에 시조문학 9월호에 '심증'이라는 시조작품이 실렸다, 1966년에는 '아침 강안'이 세 차례 추천돼 그는 마침내 한국시조작가협회 회원이 됐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25살에 군에 입대해 세 번이나 자원해 베트남으로 갔다. 군용비품 지급, 배정업무, 통역을 했다.


베트남 퀴논지역 1군수지원단 십자성부대 요원으로 근무한 지 4개월 되던 해에 불행이 닥쳤다고 하다. 전날 밤 비를 맞으며 하룻밤을 매복한 탓에 말라리아전염병에 걸렸다, 2주일 만에 의식을 찾았지만 퇴원 후에도 1주일 동안은 혼자서 화장실도 갈 수 없을 만큼 몸이 쇠약해졌다. 고통에 차 신음과 헛소리를 내면서 매일 밤을 보내고 있을 때 고국에서 온 위문편지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여자 중학교에서 보낸 위문품 뭉치에서 발견한 흰봉투에 쓰인 '신정길'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 여학생은 한 선생이 대학원을 졸업하던 식장에서 그와 결혼식을 올렸다.


군에서도 시작은 계속했다. 습작 시조가 시조문학 등에 실리기도 했다. 제대 후 4개월 만에 중등교사 시험에 합격해 1970년 여주중학교 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교사로서 30년을 보낸 그는 한국폴리텍대학에서 지난해까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렇지만 시조에 대한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1981년에는 시조시인협회 총무이사로 활동했고 985년에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장만한 돈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2000쪽이 넘는 ‘한국시조 큰 사전’을 8년 만에 펴냈다. 문단에 발을 디딘지 35년이 되는 해이자 회갑을 맞은 2001년 60편의 시를 수록한 첫 개인 시집 '적(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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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삶의 터전이었던 성남의 지역문화 보존과 전승에도 애썼다. 성남의 역사인물들을 추적해 인물사를 썼고 성남에서 3·1운동 기념식을 처음으로 열기도 했다. 여류문인 강정일당, 둔촌 이집, 송산 조견 등 10명의 추모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또 중국과 외교관계가 이뤄지기 전부터 양국 간 문화교류에 앞장섰다. 이 때문에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한 시인은 우리문학인 시조가 홀대당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한 시인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시조가 중고교 교과서에 많이 실렸는데 시조시인이 1000명이 넘은 오늘날에는 교과서에 실리는 시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시인은 "우리 것, 우리 정신을 아끼려는 노력이 문학은 물론 역사와 철학, 예술 쪽에서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우리의 역사 자산과 민족의 혼을 간직할 울림 있는 시조문학의 우수성을 청년 세대들이 깨닫고 부흥에 나서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면 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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