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 논의의 물꼬를 트면서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대선 카드'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 따르면 새누리당 주류인 친박(친박근혜)은 그동안 표면적으로 개헌 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했다. 개헌론이 국정 운영의 '블랙홀'로 작용해 불과 16개월 남긴 박근혜 정부의 권력누수 현상을 부채질할 것이라 우려한 탓이다.
반 총장을 유력 대권 주자로 꼽아온 친박은 반 총장을 대통령, 유력 친박인사를 책임 총리로 하는 이원집정부제식 권력분점을 꿈꿔왔다.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로 개헌해 외치와 내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반 총장은 차기 정권에서 '바지 대통령'이나 외교와 국방만을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을 맡는다. 친박의 정권이 재탄생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우병우 사태' '최순실 의혹' 등이 꼬리를 불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25% 안팎까지 떨어지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박 대통령이 단박에 판을 뒤집는 개헌카드를 꺼내들자, 친박도 더 이상 몸을 사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친박 진영은 박 대통령의 권력누수가 심해지면 이를 뒤집기 위해 개헌카드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중진 의원은 "새누리당 친박이 그동안 이 같은 개헌을 통해 권력 재창출의 속내를 품어왔으나, 이를 주도한다는 인상을 풍기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해 뒷짐을 지어왔다"고 전했다.
다만 여권 주류도 시기가 앞당겨진 데 대해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올해에는 노동·교육·금융 등의 개혁에 매진하고 내년 상반기쯤 박 대통령이 개헌카드를 꺼낼 것이라 예상했었다.
이에 대해 한 여권 인사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전후해 국민투표가 제안될 것이라 생각했다"면서 "권력 누수가 심화되면서 개헌 논의가 앞당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앞서 개헌론은 여의도 정가의 최대 화두였다. 여권에선 친박·비박(비박근혜)을 가리지 않고 개헌론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비박 대표인사인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이달 관훈클럽토론회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 원외에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대통령 4년중임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여권의 비박진영과 야권의 비문(비문재인)진영이 개헌을 매개로 중간지대에서 만나는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일찌감치 회자됐다. 하지만 정파마다 노림수와 청사진이 모두 다른 만큼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시작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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