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성이 요구되는 교육 자치단체장에게는 더욱 엄격한 법의 잣대가 필요하다." 12년간 인천교육의 수장을 지냈지만 퇴임 직후 영어의 몸이 된 나근형 전 인천교육감. 그는 뇌물수수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선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특정 공무원을 승진시키기 위해 부하직원을 시켜 근무 성적 평점을 조작한 잘못은 그렇다 치더라도 뇌물 액수(1900여만원)만 놓고 보면 시쳇말로 떡값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례적으로 항소심에선 더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어느 고위 공무원보다도 인사의 공정성과 도덕·청렴성이 요구되는 교육 자치단체장의 지위에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한 엄중한 책임을 물은 때문이다.
교육수장이 비리의 당사자가 된 이 사건은 마침 2014년 민선 2기 교육감 선거기간과 맞물리면서 오랜 보수교육감 체제의 인천교육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인천의 첫 진보교육감이 탄생한 것이다. 그가 바로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의 현 이청연 교육감이다.
교육비리 척결과 혁신적 교육정책을 표방한 이 교육감은 확실히 역대 교육감들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줬다. 타 시·도 진보교육감이 추진했던 혁신학교 도입, 중학교 무상급식은 차치하고 초등학교 중간·기말고사 폐지, 주민참여형 교육장 공모제, 평교사 출신 장학관 임명 등의 파격적 정책을 잇달아 내놨다.
물론 일제형 지필고사를 폐지함으로써 기초기본교육을 약화시킨다는 보수 교육단체의 반대에 부딪쳤고, 장학사나 교장 출신이 주로 장학관에 임용되던 관례를 깨고 평교사가 두 단계를 뛰어넘는 파격적 인사로 교원의 승진임용 근간을 훼손한다는 내부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틀에 박힌 교육정책을 개선하고, 학교현장에서 묵묵히 일해온 교원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승진기회를 열어줬다는 점에서 그가 추진한 일련의 시도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개혁이며 혁신이란 게 기존 조직의 혼란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따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특히 어느 집단보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교육계는 더욱 그렇다. 유권자들이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금 인천교육계는 진보교육감이 힘차게 내달리던 혁신의 페달이 멈춰설 위기에 놓여있다. 인천교육의 고질적 비리 척결을 외치던 진보교육감이 전임 교육감에 이어 또다시 뇌물사건에 연루되면서 임기 후반기를 제대로 끌어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 교육감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검찰 기소도 안 된 상황이지만 그의 측근들이 3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교육감은 도덕적으로 치명타를 입었다. 그를 향한 여론이 싸늘해진 것은 당연하다. 진보교육감에게 걸었던 기대에서 오는 배신감이 큰 이유에서다. 민주진보세력들 사이에서 억지로라도 그의 결백을 믿고 싶다는 절박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박혜숙 사회부 차장 hsp066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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