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지 못하는 기분은 이런 거구나. 서운하고 섭섭하고. 며칠전 명동 한복판에서다. 우연히 들른 이 거리는 수많은 중국 관광객들과 적지 않은 일본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또한 저 무리들을 낚기 위해 가게마다 호객꾼들이 경쟁하듯 소란스러웠다.
그 번잡함 속에서 다만 나홀로 외로웠다. 호객꾼들은 어쩐 일인지 내쪽으로는 눈길 한번 건네지 않았다. 이 가게에서 '이랏샤이마세', 저 가게에서 '환잉꽝린', 이 식당에서 '부루고기(불고기)', 저 식당에서 '토두탕(감자탕)'을 외치지만 정작 아무도 나에게 호객행위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었다. 관광객의, 관광객을 위한, 관광객에 의한 거리랄까.
그런 무관심에 발끈해서는 속으로 외쳤다. '여기요, 여기! 나도 돈 있거든요. 나도 불고기, 감자탕 먹을 줄 알거든요.'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별게 다 눈에 거슬린다. 명동에서 전도하는 이들도 도통 나에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명동거리의 비들기도 슬금슬금 나를 피하는 것 같다. 이런 '명동'스러운 일이라니.
그렇게 틱틱대면서 혼잡한 길을 빠져나오는데 문득 이런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이다. 타지를 찾은 외국인에 대한 친절을 누가 탓하겠는가. 우리도 외국에 가면 도움이 절실한 여행객이 되지 않던가.
6년 전 일이다. 혈혈단신 떠난 인도 출장길이었다. 저녁 늦게 도착한 뉴델리 공항은 낯설고 후덥지근하고 삭막했다. 지인이 소개해준 택시에 의지해 이국의 밤길을 내달려 숙소에 겨우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호텔 예약이 안돼 있는 것이다. 이게 무슨 조화냐며, 호텔 직원의 인도식 영어와 길잃은 나그네의 한국식 영어가 한참을 설왕설래한 뒤 도달한 결론은 이랬다. 실수로 이름이 비슷한 다른 호텔에 왔다는 것, 원래 호텔은 택시로 30분 넘게 가야 한다는 것, 지금 호텔에는 빈 방이 없다는 것. 이런 '인도'스러운 일이라니.
망연자실해서 호텔 로비를 서성이는데 순간 눈을 의심했다. 좀 전의 택시 기사가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혹시 몰라 밖에서 기다렸는데 예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돌아왔다'면서. '여행객에 대한 친절은 인도인으로서 당연한 의무'라면서. 예상치 못한 친절에 감복한 나그네는 택시 기사를 꼬옥 껴앉을 뻔 했다나.
낯선 곳일수록 작은 친절에 쉽게 감동하는 법이다. 만약 저 순간 인도 택시 기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바람에 인도 출장 첫날을 망쳤다면. 역지사지다. 한국을 찾은 여행객에게 호객꾼의 친절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다. 색다른 경험이다. 그러니 호객꾼의 관심을 저들에게 빼앗겼다고 서운해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외국 관광객을 향한 우리 안의 몰상식과 몰염치를 부끄러워해야 한다. 지리가 어두운 여행객에게 두배, 세배가 넘는 바가지 요금을 씌우는 속물근성을. 말이 안 통한다고 함부로 휘두르는 불친절을. 더불어, 명동이 앞으로도 계속 '친절하게' 소란스럽기를.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