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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엄지와 검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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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엄지와 검지 사이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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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는 199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수상작은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death of naturalist)'. 스웨덴 아카데미는 히니가 '서정적 아름다움과 윤리적 깊이를 갖추어 일상의 기적과 살아 있는 과거를 고양시키는 작품을 썼다. 특히 정치적 수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북아일랜드의 갈등을 다뤘다'고 평가했다.


 히니는 자주 윌리엄 예이츠와 비교되었다. 예이츠는 19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서 히니와는 성장배경이나 시에 대한 접근방식이 다르다. 부유하게 자란 예이츠는 평생에 걸쳐 사랑 노래를 불렀다. 히니는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 신ㆍ구교의 갈등과 정치 현실을 직시하며 글을 썼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일랜드의 신화와 역사에 뿌리를 둔 공통점이 있다.

 히니는 고대 언어를 현대 영어로 번역하는 데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번역한 '테베에서의 장례식(2004)'과 2006년 T. S. 엘리어트상을 수상한 '구역과 원(2006)'이 있다. 15세기 시인 로버트 헤린슨이 쓴 중세 스코틀랜드의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 1999년에는 '베오울프(Beowulf)'를 번역해 '휘트브레드 올해의 책'을 수상했다.


 베오울프는 8~11세기에 씌었을, 고대 영어로 된 영웅 서사시이다.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필사본이 한 묶음 남아 있는데 길이가 3183줄이나 된다. 그래서 언어학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과 교수로 일하는 김대식은 베오울프에 대해 쓰면서 고대영어를 현대영어로 번역한 책 가운데 히니가 번역한 W. W. 뉴튼 앤드 컴퍼니 판(版)을 읽으라고 추천했다. 그가 보기에 베오울프는 '오늘 잠에 들면 내일 깨어날지 모르는 세상. 매일 하루가 모험이고, 하루를 살아남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김대식은 베오울프가 '내용보다는 색깔, 결론보다는 소리, 책의 교훈보다는 피부로 느끼는 전율이 더 중요한 작품이기에, 사실 번역 불가능한 책'이라면서 히니의 번역은 원작의 분위기와 느낌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베오울프는 에즈데오우의 아들이며 히옐락 왕의 신하로, 기트 족의 영웅이다. 성품은 고귀하고 체격은 거대하며 용사 서른 명을 합친 것과 맞먹는 악력을 자랑했다. 이웃 나라 덴마크에 나타난 괴물 그렌델을 물리쳐 영웅으로 떠오른다. 훗날 왕이 되어서는 왕국을 침략한 화룡(火龍)에 맞서 싸운다. 그는 용을 죽이고 장렬하게 산화한다.


 베오울프의 엄청난 힘을 설명하면서 악력을 사례로 든 점이 재미있다. 악력은 인간에게 잘 어울리는 힘이다. 엄지와 그 형제 손가락이 없다면 개념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악력의 중심(또는 시작되는 지점)은 엄지와 검지, 그 사이일 것이다. 그리고 두 손가락은 새털을 집어들 때처럼 매우 섬세한 움직임이 필요할 때 협력하거나 협업한다.


 그리고 우리는 친한 친구에게 알았노라고, 문제없다고 대답하거나 안심시킬 때 엄지와 검지를 맞대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요즘은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애교하트'를 발사하기도 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보내는 애교하트는 위력이 두 팔을 머리에 얹어 만드는 대형 하트 못지않다. 심쿵!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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