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도 지나고 한 풀 꺾일 만도 한데 더위는 아직은 어림없다는 듯이 기세가 등등이다. 연일 높이 올라가는 기온으로 반갑지 않은 기록 경신을 세우고 있는 이번 여름은 무덥다기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가까울 정도로 겁이 났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시원한 물 한 잔만 벌컥 들이켜도 더위가 가시고 정신도 번쩍 차려졌는데 요즘은 온갖 약재 들어간 삼계탕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어도 좀처럼 기운이 차려지질 않아 이 여름이 더 힘겹기만 하다. 타박할 데 없으니 내 허락도 없이 먹어가는 나이 탓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무덥고 무서운 날씨 속에서도 먹고사는 일은 계속되니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나 냉장고 문고리를 잡고 꼼지락댄다. 시원한 냉장고 속이라도 재료가 쉬이 상할까 여름엔 거의 그때 그때 재료를 사다 바로 해 먹는데 오늘은 그럴 여력이 없어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다. 텅 빈 속처럼 비어 있는 냉장고를 보자 갑자기 퇴근길 라디오에서 아나운서가 읽어주던 시가 생각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쓸데없는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리고
깨끗해진 머리 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그릇 하얀 김 하얀 밥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하얘지고 둥그래지는 얼굴
-김기택 시인의 ‘밥 생각’ 中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머릿속엔 온통 밥그릇이 둥둥 떠다닌다. 두툼한 흰 도자기 밥그릇 위로 봉긋하게 솟아올라 뽀얀 김 내뿜는 흰 쌀 밥. 차가운 보리차 물에 한 술 말아서 잘 익은 깻잎장아찌 한 장 척 올려 한 입 쏙!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나 오늘도 여전히 덥다. 그래서 오늘은 흰 쌀 밥 못지않게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고 입안 상큼해지는 샐러드 파스타 한 그릇 만들어 봐야겠다. 여기에 시원한 청주는 덤이다. 작은 잔에 쪼르르 따르면 잔 주위에 서리는 선선한 물방울 바라보며 더위도 잠시, 근심도 잠시 접는다.
샐러드 파스타
주재료(2인분)
방울토마토 10개, 양파 1/4개, 2대, 파팔레 100g, 새우 8마리
드레싱 재료
올리브오일 3, 레몬즙 2, 다진 마늘 0.5, 청양고추 1개, 설탕 0.5,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 요리 시간 30분
1. 방울토마토는 반으로 썰고 양파는 곱게 채 썰고 실파는 송송 썬다.
2. 파팔레는 끓는 물에 8분정도 삶아 건져 물기를 빼고 식히고 새우는 손질하여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Tip 파스타는 기호에 맞는 종류를 사용하면 된다.)
3. 분량의 드레싱 재료를 섞는다.
4. 볼에 삶은 파팔레를 넣고 드레싱을 넣어 버무린 다음 새우, 방울토마토, 양파를 넣어 섞고 실파를 뿌린다.
글=요리연구가 이정은,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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