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진화는 커녕 위기의 진원
막대한 돈풀기는 자산버블만
선제적 안내는 시장혼란 키워
정부정책 순응하며 독립성 훼손 비판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과거 글로벌 위기 때마다 소방수 역할을 하며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중앙은행들이 신뢰성 위기를 겪고 있다. 막대한 돈 풀기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의 최대 목표인 물가 살리기는 요원하며 경기회복 불씨마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작한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는 오히려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현재 중앙은행들의 가장 큰 고민은 통화정책의 약발이 먹혀들지 않으면서 위신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지 6개월이 지났지만 디플레이션 탈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으며 엔화 값은 오히려 고공행진 하고 있다. 더 먼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던 유럽이나 브렉시트 이후 적극적으로 통화완화에 나서고 있는 영국, 금리인상을 미루고 있는 미국까지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풀어놓은 유동성은 주식·채권·부동산 같은 자산버블만 키운 채 실물경제를 살려놓는 데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채권왕' 빌 그로스가 "돈 풀기 정책에만 집착하는 중앙은행들이 경제 엔진을 망치고 있다"며 쓴 소리를 내놓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중앙은행들의 '입'도 문제다. 중앙은행의 성명이나 의사록, 총재 발언이 정확한 신호를 주기는 커녕 해석을 놓고 혼란만 커지고 상황이 늘고 있다.
최근 미국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잇따라 조기금리 인상론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시장은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다. 유력한 금리인상 시점으로 여겨졌던 지난 6월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서도 몇몇 지역 연은 총재들이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됐던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나 마리오 드라기 ECB(유럽중앙은행) 총재가 완화를 단행할 것이란 신호를 꾸준히 시장에 준 뒤 정작 동결해 시장의 실망감이 혼란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이를 계기로 중앙은행 총재들이 말로만 떠들다 그치는 '립서비스 정책'을 그만둬야 한다는 비판이 확산됐다.
ECB는 18일(현지시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파를 우려하면서도 즉각적인 대응이나 시장의 과도한 기대는 없어야 한다는 애매한 내용의 7월 의사록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도 전문가들은 9월 추가 부양이 예고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의 효과가 줄어들고 잘못된 가이던스를 주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독립성에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라구람 라잔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의 연임 문제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 3년간 물가와 금융안정에 크게 기여한 라잔 총재가 정부의 경기부양 요구에 맞서면서 연임에 실패한 사례에 대한 국제적 여론은 좋지 않다.
국민들과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을 신뢰할 때 통화정책들은 효과를 발휘한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기업들은 투자를 꺼리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신뢰성 회복이 그 어떤 립서비스나 역사적 양적완화보다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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